지난 22일 미국 뉴욕연방법원의 국채 상환 판결이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을 단번에 다섯 단계 떨어뜨렸다. 아르헨티나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2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장기 신용등급을 ‘B’에서 ‘CC’로 다섯 단계 내린다고 발표했다. 단기 등급은 ‘B’에서 ‘C’까지 떨어뜨렸다. 장기등급 ‘CC’는 피치의 등급 가운데 21번째로 투자부적격(정크) 등급 가운데서도 11번째로 낮다. 단기 등급 C는 디폴트 바로 직전 단계다.

피치는 신용등급 강등의 이유로 지난주 나온 미국 법원 판결을 들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2001년 1000억달러 디폴트가 났을 때 채무 구조조정(채권의 만기를 연장하거나 금액을 깎는 것)에 응하지 않았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13억달러의 채무 상환 소송을 제기했고 뉴욕연방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내달 15일까지 우선적으로 갚으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판결을 이행하지 않으면 다른 채권자들의 돈도 갚을 수 없다고 명령했다. 명령은 아르헨티나가 채무 상환을 위해 이용하는 월스트리트 수탁은행 BNY멜론에 돈을 송금하면 미국 법원이 이를 무조건 압류하는 방식으로 집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는 엘리엇매니지먼트 이외에 다른 금융회사 채무를 갚을 돈이 있어도 갚지 못하는 기술적 디폴트에 빠진 셈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돈을 갚더라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2005년과 2010년 채무 구조조정에 응하지 않았던 또 다른 채권투자자들이 110억달러 이상의 채무 상환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피치는 아울러 연 25%에 달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취약한 사회기반시설, 통화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족도 신용등급 강등의 이유로 언급했다. 경제 전반도 급격히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르헨티나는 최근 물가 상승과 외화 유출을 염려한 정부의 강력한 수입 규제, 물자 부족 등으로 연일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피치는 등급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라고 밝혀 추가 신용등급 강등을 예고했다. 다른 신용평가사들도 이 같은 결정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무디스는 아르헨티나에 B3, S&P는 B-의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둘 다 이미 정크등급으로 디폴트보다 세 단계 높은 수준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