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법 부천지원이 지난 9월 대출 고객이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금융회사가 반환하라고 내린 판결의 파장이 주목된다. 그동안 이어진 대규모 집단 소송전에서 대출 고객과 금융회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첫 판결 의미는

근저당권 설정비용 소송의 큰 쟁점은 △비용 관련 약관이 무효인지 △약관이 무효라면 비용은 대출 고객과 금융회사 중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 △반환 소송 제기가 가능한지에 영향을 주는 소멸시효는 5년인지 10년인지 등 세 가지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의 이창경 판사는 주요 쟁점 가운데 소멸시효를 제외한 두 가지에 대해 판단했다. 이 판사는 약관이 무효인지 여부에 대해 “약관은 외형상 대출 관련 부대비용 부담에 대해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는 형식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고객에게 충분한 설명이나 협의도 없어 고객의 실질적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며 “금융회사는 고객에게 비용을 전가하거나 가산금리를 적용했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쟁점에 대해서는 “1960년대에 저당권 설정등기비용은 채무자 부담이라고 본 대법원 판례가 있었지만 거래원칙과 관행이 달라졌으므로 이 사건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며 근저당권 설정비용은 금융회사의 몫이라고 봤다.

○“근저당비 돌려달라” 이어진 소송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돌려 달라는 소송은 전국 법원에 계류돼 있다. 집단소송을 주도한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 법무법인 태산 등 법률사무소에서 현재 제기한 소송 규모만 300억원대(소송가액 기준)로 추정된다. 여기에 법무사를 통해 소액사건으로 진행되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계류 건수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소비자원에서도 근저당권 설정비용 반환 집단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소비자원이 접수해 지난 7월 제기한 집단소송 참가자 수는 4만2000명, 대상 금융회사 수는 은행, 생명·손해보험사, 카드사 등 총 1500개에 달한다.

○금융사·대출고객, 치열한 법정공방

10조원대 근저당권 설정비용 반환 여부를 두고 고객들과 금융회사들은 팽팽한 법정전을 펼쳐 왔다. 최종 대법원 판결까지 가야 승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다음달 6일 1심 선고가 예정된 국민은행 상대 소송에서 대출 고객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로고스의 한혜진 변호사는 “이미 대법원에서 근저당권 설정비용 관련 약관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며 “대법원 판례도 담보권 확보 비용을 담보권자(금융회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해 왔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또 “설정비용을 고객에게 부담시키는 경우도 있었고, 비용을 금융회사가 부담했어도 금리를 올려 결과적으로는 고객에게 비용을 전가시켰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륙아주, 바른, 율촌, 지평지성, 태평양 등 대형로펌을 앞세워 방어하고 있는 금융회사들은 “설정비를 고객이 부담할 경우 금리를 깎아주는 등 차별을 뒀기 때문에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하지 않았으며, 은행이 부당하게 이득을 본 것도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의 이광진 변호사는 “부천지원 판결을 확대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채권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도 민법상 ‘별도 합의가 없는 경우 채무 이행을 위해 필요한 비용은 채무자가 부담한다’는 것과 배치돼 법적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고운/이상은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