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 국내 증시의 최대 'FA(자유계약) 선수' 한국항공우주(KAI)의 인수·합병(M&A) 협상이 이번 주 열린다. 오는 30일 대한항공현대중공업 간 인수전(戰)의 최종 승자를 가릴 본입찰이 진행될 예정이다.

M&A 관련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번 M&A에 대해 '헐값에 팔리거나 혹은 유찰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판단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적정가격'에 반드시 인수할 계획이라고 반복 중이고, 현대중공업도 적정가격을 써내기 위한 예비실사 연장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26일 카이 주주협의회와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카이의 최대주주인 정책금융공사는 예정대로 30일 본입찰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내달 초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다.

대한항공은 그간 불안한 재무구조 탓에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확대되면서 인수자격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인수 의지가 없다'라는 비판을 속시원하게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현재 시가총액이 2조7000억원(11월말 기준)에 달하는 카이의 경우 '제값'을 받아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 이상 M&A 프리미엄은 기대해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지난 상반기말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800%를 웃도는 대한항공이 카이의 시장 가격으로 인수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라며 "대한항공은 계속 '인수 적정가격'을 강조해 왔는데 현재 카이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3배로 항공주(株) 평균 1.2배 대비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의 '적정가격' 주장 반복이 정책금융공사와 현대중공업을 동시에 압박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는 게 이 애널의 판단이다. 현대중공업 역시 조선 업황이 긍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한 가격을 주고 인수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

그는 "정책금융공사 등 주주협의회는 사실 최대한 비싼 가격에 카이를 매각하기 위해서 그간 기업공개(IPO) 이후 증시에 진입한 것인데 1년 동안 시장이 평가하고 유지해온 가격이 아닌 소위 '헐값'에 매각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라고 말해 이번 M&A의 유찰 가능성도 열어뒀다.

일반기업이 아닌 국가 기간 사업을 벌이는 기업이라서 카이의 M&A가 난항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M&A 전문가는 "카이는 방위사업과 관련해서 여러 번 중복감사가 이뤄지고 있는 곳으로 재무제표상 허위 오류 등이 발견되기 어려운 게 상식적인 일"이라며 "실사 기간이 짧아도 인수가격 책정 시 특별한 지장은 없어 보이지만 사실 기술 유출 등이 문제로 불거질 수 있어 오히려 더 보수적인 가격에 매각될 수도 있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물량투입이 가능한 해외기업들이 너도나도 인수 의지를 밝혀와도 쉽게 매각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잉여 자본이 많은 몇몇 국내 대기업들만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게 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그러나 '인수 적정가격'에 대해 "인수 적정가격이란 것은 현 시장 가치보다 비싸질 수도 있고 반대로 싸질 수도 있는 것"이라며 "기업의 적정가치를 꼼꼼히 따져봤을 때 프리미엄을 주더라도 적정한 가격이면 인수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대한항공은 "카이의 적정한 인수가격을 매기기 위해 국제 공인 컨설팅업체에 적정가격 평가를 의뢰해 놓은 상황"이라며 "이 결과를 받은 이후에도 충분히 심사한 뒤 인수가격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카이 노조는 반면 "대한항공이 이미 2003년 당시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의 KAI 지분(2596만주, 전체지분의 28.1%)을 인수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납입을 앞두고 액면가인 5000원(인수금액 약 1300억원)이 고(高)평가됐다고 주장하며 당시 딜(거래)을 무산시킨 바 있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한편 KAI의 매각 대상 지분은 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한 지분 26.4% 가운데 11.41%와 삼성테크윈(10%), 현대자동차(10%), 두산그룹(5%), 오딘홀딩스(5%), 산업은행(0.34%)의 지분을 합친 41.75%로 알려져 있다.

또 이 지분의 인수 적정 가격은 최근 3개월 평균 종가를 기준으로 1조1000억~1조2000억원으로 책정되고 있으며 경영권 프리미엄을 30%로 가정하면 1조4000억~1조5000억원 정도로 산정되고 있다.

이제 최종 인수 가격을 놓고 벌이는 '숫자의 대결'만 앞두고 있다. 이 대결 이후 정책금융공사는 물론 대한항공, 현대중공업 등 인수 관련 당사자들의 '진짜 인수가격'과 그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으로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