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역 3번 출구를 나와 모퉁이를 돌면 한눈에 들어오는 그곳은 만남의 장소이자 추억의 장소였다. 한 달 사이에 가게 3~4곳은 간판을 갈아치우는 신촌 거리에서 그곳은 60여년간 자리를 지켜왔다.


서울 창천동 홍익문고의 얘기다. 25일 오후 홍익문고에서 만난 고객들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홍익문고가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단골들이었다.


서대문구 재정건설위원회는 이달 23일 홍익문고 자리에 상업·관광·숙박 시설을 건립하는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 계획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계획안을 최종결정하면 홍익문고 자리에 최고 높이 100m, 최대 용적률 1000% 이하의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이날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이어진 홍익문고 안은 조용했다. 문학, 신간 서적 및 잡지를 진열해 놓은 1층에선 10여명이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신촌에서 친구를 만나기 전 문고에 들렀다는 직장인 김가은 씨(27)는 "홍익문고는 젋은 사람들이 바쁜 와중에도 잠시 들러 머리를 채우는 공간이었다" 면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2층 경영 서적 코너에서 만난 이우철 씨(63)는 "책을 사러 집 근처 대형 서점을 두고 일부러 여기까지 왔다" 며 "대학 시절 단골이었던 홍익문고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뉴스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홍익문고 직원들도 직장이 폐점 위기에 처한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23년간 홍익문고에서 일한 최장기 근속자인 이성호 과장(46)은 "재개발 사업이 정말 진행된다면 홍익문고의 20여명의 전 직원들이 소중한 직장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허탈해 했다.


홍익문고는 폐점을 막기 위해 이달 10일부터 21일까지 '홍익문고 재개발 구역 지정 반대'를 위한 1차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번 서명운동에는 4500여명이 동참했다. 팩스로 서명을 보내온 고객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부터 서명을 모아 건네 준 대학생들도 있었다.


박세진 홍익문고 대표(44)는 “매장 일부를 임대로 내놓으라는 유혹도 받았지만 신촌에 서점 하나쯤은 꼭 필요하다" 며 “재개발 사업으로 짓는 상업 건물에서 생기는 이익보다 지켰을 때의 브랜드 가치가 훨씬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익문고는 1960년 고(故) 박인철 대표에 의해 중고서점으로 처음 설립됐다. 1997년 외환위기 전후 인문사회·과학 서적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매출은 하향 곡선을 그렸다.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 신촌의 대표 서점이었던 '알서림'과 ‘오늘의 책’이 각각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홍익문고는 자리를 지켰다.


이와 관련,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27일 "26일 열린 정책회의에서 홍익문고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신촌 도시환경정구역에서 홍익문고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홍익문고 존치를 담은 변경안이 서울시에 상정되면 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한경닷컴 이하나 기자 l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