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런 차를 강남에서만 타면 아까운거 아니냐?”

얼마 전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찾았을 때 동승한 선배 기자가 외친 말이다. 영국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브랜드인 랜드로버가 4세대 신형 레인지로버의 글로벌 출시를 앞두고 기자들을 대상으로 시승행사를 가졌다. 한국 기자단은 그곳에서 일본, 호주, 홍콩 기자들과 함께 레인지로버를 타고 고속도로는 물론 오프로드를 뚫고 들어가 사막을 지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걸어서 간 게 아니고 모두 차를 타고 갔다.

참가자들 모두 레인지로버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놀랐다. 레인지로버는 지형에 따라 차량의 세팅을 바꿔가며 모래사막을 달렸고, 자갈밭을 건넜으며 깊이 900㎜의 강을 힘차게 헤쳐 나갔다. 그 때마다 기자는 “와!”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말은 결코 헛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다이내믹한 오프로드 주행을 맛볼 수 있는 차였다니….’

레인지로버에 대한 담당자들의 설명도 차량이 얼마나 ‘럭셔리’한가보다는 얼마나 ‘성능이 우수한가’에 집중돼 있었다. 1시간가량 진행된 프레젠테이션 중 40분 이상을 자사의 기술적인 노하우가 얼마나 개선돼 레인지로버에 적용됐는지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그리고 그 설명은 단순히 자랑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다음날부터 차를 태워주면서 대부분 직접 확인시켰기 때문이다.

이 차를 타 본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했다. “이거 강남에서 얌전하게 타면 이 차의 진짜 매력을 제대로 알 수 없겠는데?” 그렇다. 맞는 말이다. 레인지로버, 랜드로버 등 오프로드를 겨냥한 SUV를 잘 정돈된 시내 아스팔트 도로에서만 타고 다니는 건 어찌보면 어리석다. 수백만원을 들여 최고급 등산복을 마련해 근사하게 차려입고 동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타는 꼴이다.

포르쉐 박스터나 닛산 GTR과 같은 스포츠카를 사놓고 집에서 20분 거리의 회사만 왕복한다면 사람들은 “저 놈 저렇게 출퇴근만 할 거면 스포츠카를 왜 산 거야?”라고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레인지로버나 ‘디스커버리4’와 같은 정통 SUV를 타고 출퇴근하고 장보러가는 걸 보며 “저럴거면 랜드로버를 왜 산거야?”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에 ‘오프로드 주행’이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동호회와 마니아들이 이런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 시내에서만 탈 거면 레인지로버를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레인지로버의 시내 승차감은 정말 좋다. 세단의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개발됐고 이걸 사서 출퇴근만 하든, 차고에만 세워두든 그것은 소유주의 마음이다. 다만 기자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자신이 소유한 레인지로버에 얼마나 막강하고 고급스러운 오프로드 기능들이 탑재돼 있는지 확인한다면 기자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주말이면 오프로드가 있는 곳을 찾아가 이런 기능들을 하나 둘 확인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최근 아웃도어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동차 쪽에서도 이 같은 오프로드 주행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쪽에 관심을 갖는다면 시내 주행이나 비포장도로 정도에서만 달릴 수 있는 ‘무늬만’ SUV인 국산 차량들도 기술 개선이 이뤄질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면 기업은 바뀐다. 결국 더 많은 소비자들은 보다 접근 가능한 가격에 이 같은 오프로드 주행의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차를 만나게 될 것이다.

레인지로버, 랜드로버, 지프 등을 소유한 분들에게는 이런 중요한 역할이 요구된다고 감히 주장해본다. 겨울이라고 움츠러들지 말고 이번 주말엔 차를 타고 거친 지형을 찾아가보시길. 인생의 또 다른 기쁨이 찾게 될 거라 보장한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