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급순위 35위의 남광토건이 2010년 7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면서 우리·산업·농협·국민 등 채권은행들은 2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지원했다. 채권단에 속해 있는 무역보험공사와 서울보증보험 몫인 615억원이 포함된 돈이었다. 당시 보증기관들은 자금 지원 기능이 없기 때문에 손실이 나면 공동 분담키로 하고 보증을 섰다.

문제는 남광토건이 지난 8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불거졌다. 법정관리가 시작되고 채권·채무가 동결되면서 은행들은 보증기관에 손실분담금 정산을 요구했다.

무보와 서울보증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증 범위와 손실부담 정산시기 등에 대한 견해차 탓이다. 은행들이 남광토건에 대한 경영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해 부실이 커졌다는 주장도 했다. 결국 은행들은 소송을 내기로 했다.

26일 금융당국 및 은행, 보증기관 등에 따르면 남광토건 채권은행들이 이르면 이번주 안에 무보와 서울보증을 상대로 ‘채권단 공동 손실부담 이행 청구소송’을 내기로 했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도 무보와 서울보증에 손실부담금 615억원을 내라고 했지만 보증기관들이 버티고 있다”며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워크아웃을 밟던 건설사들이 잇달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은행과 보증기관 등 채권단 간 법적 다툼이 확산되고 있다.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기업 부실화가 초래한 갈등이다.

기업이 워크아웃 절차를 밟을 때는 자금 상환 만기일을 연장해주면 문제가 없지만,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액 규모를 따져 손실액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보증의 덫’이 현실화된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불황이 깊어지고 기업들이 빚을 못 갚게 되면서 보증기관들이 부실을 줄이려 버티다보니 은행들과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용기계 제조사인 케이에스인더스트리의 채권은행인 산업·기업·외환은행 등도 내달 초 기술보증기금을 상대로 소송을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툼의 원인은 남광토건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채권은행들이 케이에스인더스트리의 패스트트랙(신속자금지원) 프로그램 과정에서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기보가 손실을 공동 부담하기로 했지만, 정작 회사가 법정관리 절차를 밟자 기보가 이를 거부해서다.

기업의 워크아웃 과정에서 은행과 보증기관이 갈등을 빚는 사례도 있다. 워크아웃을 진행 중인 진흥기업 채권단인 우리·산업은행은 내달 신용보증기금을 대상으로 채권단 공동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신보가 진흥기업의 우면지구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에 대해 채권단 의결에 따라 지원하기로 한 101억원의 보증을 집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신보는 공사대금 채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브리지론 보증제도를 통해 2009년부터 이 PF사업장을 지원해 오다가 진흥기업의 워크아웃이 진행된 지난해부터 지원을 중단했다. 보증이 집행되지 않자 은행권의 관련 대출도 중단된 상태다.

이미 소송을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우리·국민·신한·농협은행 등 벽산건설 채권은행들은 지난달 한국투자증권과 유진투자증권, 경기저축은행 등을 상대로 345억원의 손실분담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벽산건설이 워크아웃 절차를 밟던 2010년과 작년 두 차례에 걸쳐 은행들이 2174억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할 때 2금융권 3개 회사가 나중에 손실부담을 하기로 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어서다.

주재성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금융회사와 보증기관, 기업 모두 경기 침체기일수록 보증과 관련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보증을 단순히 약속으로 여기기보다는 실제로 대출을 해줬거나 돈을 지급한 것으로 생각하고 유동성과 재무상태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