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에 가짜 수출 내역서나 가짜 전세계약서를 제출해서 돈을 빌린 뒤 연락을 끊어버리는 식의 금융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 서민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를 범죄자들이 악용하는 꼴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 무역보험공사, 시중은행 등이 수출 및 주택자금 대출 사기를 당한 액수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수출 실적이나 전세계약서를 위조해 대출받았다가 범행이 들통나 확정 판결을 받은 사례만 이 기간 중 20여건에 300억~400억원 수준이다. 부실 대출로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 단계에 있거나 사기로 의심되는 대출도 500억~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불황 지속으로 사기 대출이 극성을 부리면서 최근 두 달 새 검찰과 경찰에서 140억원대 범죄를 적발했다. 서울경찰청은 유령회사의 수출 실적을 위조해 무역보험공사의 ‘수출신용보증제도’로 무역금융 대출 102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일당 10명을 구속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노숙자에게 돈을 주고 명의를 빌려 유령회사를 만든 뒤 무역보험공사에서 10억여원을 빌려 가로챈 일당도 검거했다. 유령회사에서 가짜 재직증명서를 만들고 전세계약서를 꾸며 5개 은행 등에서 25억5500만원을 대출받아 가로챈 일당 3명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대출 먹튀’가 발생하는 이유는 대출심사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돈을 떼여도 무역보험공사(수출신용보증)나 주택금융공사(주택기금)가 80~90%를 책임진다. 지급 보증과 심사 업무를 수탁받은 은행은 심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관계기관들은 뒤늦게 제도를 뜯어고치고 있다. 무역보험공사는 작년 말 은행에 수출신용보증 심사를 위탁하는 수탁보증 제도를 폐지하고 직원이 직접 심사하는 것으로 원상복구했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고객이 주거래은행에서 지급보증 심사까지 받으면 좋을 것이라 여겨 제도를 만들었는데 악용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