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학 사장, 모두 몸 사릴때 공격경영…밥솥 1위 '역전승'
찜통 더위가 한창이던 1998년 8월1일. 그는 휴가를 떠나는 대신 회사 간부 15명과 함께 회사 구내식당에서 사흘간 워크숍을 열었다. 주제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인가’였다. 당시는 외환위기의 삭풍이 몰려와 경기는 꽁꽁 얼어붙고 매출이 급감하던 시기였다. 워크숍에서 결론이 쉽게 나올 리 없었다. 답답한 토론이 이어졌다. 모두가 잠든 밤 11시. 그는 차를 몰고 집으로 달려갔다.

“사람을 못 자른다니 둘 중의 하나는 해주이소. 외상을 하게 해주시든지, TV광고를 하게 해주시든지…. 양단간의 결정을 지금 내려주이소.”

입사 2년차 구본학 쿠쿠전자 해외영업팀장(당시 29세)은 창업자인 부친 구자신 사장(현 회장)을 설득하고 나섰다. 제안이 받아들여 지지않으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아들의 도전적인 말을 듣던 구 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광고하는 데 얼마면 되겠노.” “한 3억원 정도 지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더.” “그거 가지고 되겄나. 10억원은 해야제.”

국내 1위 밥솥업체 쿠쿠전자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경쟁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몸을 움츠리고 있을 시기에 후발주자인 쿠쿠전자는 되레 ‘공격 경영’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 그리고 정확히 1년4개월 후. 쿠쿠전자는 경쟁자였던 삼성전자 LG전자 마마전기 대웅모닝캄 등 4개 회사를 모두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코끼리 밥솥’으로 불리는, 주부들의 로망 일본산 조지루시 밥솥도 쿠쿠 때문에 뒷자리로 물러서야 했다.

그는 1998년 초 아버지를 설득해 LG전자를 상대로 20년간 해오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 납품 사업을 접고, 자체 브랜드 ‘쿠쿠밥솥’을 출범시키면서 ‘앙팡테러블(무서운 아이)’의 가능성을 예고했다.

“경기가 고꾸라지는 상황에서 안전한 OEM 사업을 접고 돈이 많이 드는 자체 브랜드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반대가 심했죠. 거기다 외환위기 때 돈을 들고 광고를 한다니 또 다들 미쳤구나 하는 반응이었죠.”(2006년 사장에 취임한 구본학 사장은 이제 그럴 듯한 표준어를 사용한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쿠쿠라면 역전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게다가 해외 영업부에서 20억원의 현금까지 마련해 둔 터였다. 그가 해외영업팀장으로 해외시장을 뚫자마자 외환위기가 터졌고, 환율 폭등으로 환차익이 생기면서 투자 밑천이 생겼던 것.

구 사장의 베팅은 잭팟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경영 원칙이 없었으면 쿠쿠밥솥의 히트는 당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공을 부친에게 돌렸다.

부친 구자신 회장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과 10촌간인 범 LG가의 일원이다. 그의 집은 경남 진주시 승산리에 있는 LG 창업주 연암 구인회 회장의 생가 바로 옆에 있다.

그는 금성사의 밥솥사업을 인수, 1978년 쿠쿠전자의 전신인 성광전자를 설립했다.

성광전자는 1988년까지 LG그룹의 덕을 봤다. OEM사업을 통해 10년 만에 매출 300억원의 견실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LG전자가 자체 사업에 나서고 납품경쟁을 붙이면서 성광전자는 어려움에 빠졌다. 10년 동안 매출 300억원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독한 정체기였다. 비용은 계속 늘어나는데 매출은 정체 상태로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었다. 구조조정을 하거나 문을 닫거나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구 회장은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40여명의 연구원도, 놀고 있는 생산라인의 직원들도 모두 그대로 떠안고 갔다. 구본학 사장은 자신이 입사했던 1996년 상황을 “회사가 거대한 공부방 같았다”고 회고했다.

구 회장의 이 같은 ‘인화 경영’은 쿠쿠전자가 자체 브랜드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10년은 아니었죠. 매출은 정체돼 있었지만 연구원들은 공부방 같은 연구실에서 꾸준히 기술 개발에 나섰고, 쿠쿠가 자체 브랜드로 다른 경쟁사와 본격적으로 맞붙을 때 저력이 나타났습니다.”

쿠쿠전자의 현재 밥솥시장 점유율은 73%. 1999년 이후 13년간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가 입사한 1996년 300억원 하던 매출은 15년 만에 4000억원이 됐다.

구 사장은 수출과 신사업에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그는 쿠쿠밥솥의 세계화를 추진, 현재 미국 베트남 러시아 영국 등 35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또 정수기와 비데, 청소기, 전기주전자, 믹서기 등 생활가전 쪽으로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구본학 사장은 △1969년 서울 출생 △1992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94년 미국일리노이대학 회계학(석사학위) △1994~1996년 미 쿠퍼스&라이브랜드서 회계사 근무 △1996년 쿠쿠홈시스 입사(기술연구소) △2004년 쿠쿠홈시스 대표이사 부사장 △2006년 쿠쿠전자 대표이사 사장 취임

양산=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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