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대외적으로 미국 애플에 대해 언급한 것은 극히 드물다. 작년 4월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하자 “애플뿐만 아니라 우리와 관계 없는 회사까지도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고 말한 게 거의 유일하다고 할 정도다.

그룹 내부에선 다르다. 틈만 나면 다양한 언어로 애플 극복을 주문하고 있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디자인과 소프트웨어에서 애플을 넘어서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이런 분위기는 이 회장의 동선에서도 감지된다. 이 회장은 작년 4월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나오는 ‘출근경영’을 시작한 뒤 첫 방문지를 삼성전자 디자인센터로 정했다. 지난 6일 한 달간 해외출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선택한 1번 오찬 대상도 디자인 핵심 인력들이었다.

작년 7월엔 삼성전자 사장단에 “소프트웨어, 디자인, 서비스 등 소프트기술의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며 “필요한 기술은 악착같이 배워서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우수 인력 확보로 바빠졌다. 작년 10월 전체 연구·개발(R&D) 인력 5만명 중 50%를 차지하는 소프트웨어 인력 비율을 70%까지 늘리기로 했다. 국내에서 소프트 인력 확보가 여의치 않자 인도 러시아 등 해외 인력 채용에도 적극 나섰다.

끼가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해 필기시험 없이 면접만으로 채용하는 ‘창의 플러스 전형’도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다. 우수 인력이 선호하는 서울에 디자인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1조2000억원을 투입, 서울 우면동에 R&D센터를 짓고 있다.

하드웨어에선 초격차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애플이 가져다 쓰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의 품질에서 경쟁사를 압도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9월 애플이 무리하게 가격 인하를 요구하자 아이폰5에 메모리반도체 등을 납품하지 않은 배경이다.

애플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있다. 애플과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전자제품과 부품이 아닌 새로운 사업을 주력 분야로 키우려는 시도다. 2010년 5월 신수종 사업으로 정한 의료기기, 태양전지, 자동차배터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바이오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 걸음마 단계로 이 분야에서 안착할 수 있느냐가 ‘탈(脫) 애플’의 관건이다.

“한번 세계의 리더가 되면 목표를 자신이 찾지 않으면 안되며, 또 리더 자리를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는 이 회장의 말처럼 삼성전자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