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치르본 화력발전소 2차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합작사의 최대주주 일본 마루베니상사가 한국 기업을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치르본 1차 프로젝트를 통해 동남아 민자 발전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한국 기업들에 대한 일본의 견제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치르본 프로젝트 합작사 ‘치르본 일렉트릭 파워(CEP)’의 최대 주주 마루베니는 100만㎾ 규모의 석탄 화력발전소 확장 사업계획을 마련해 인도네시아 정부에 제안했다. 마루베니는 치르본 발전소 확장 사업에서 1차 사업의 기자재 공급, 터빈 제작 및 건설을 담당한 두산중공업을 빼고 히타치와 도시바 등을 참여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1차 발전소 운영을 맡은 중부발전을 배제하고 2차 발전소 운영권을 일본 업체에 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총 8억5000만달러가 투입된 1차 사업은 한전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이 설계와 감리를 담당하고 두산중공업이 기자재 공급과 발전소 건설을, 한국 자원개발업체 삼탄이 석탄 공급을 맡는 ‘메이드 인 코리아’ 방식으로 지난달 18일 준공됐다. 한국 업체들이 발전소 설계와 기자재 공급, 건설, 운영을 모두 책임지는 일괄도급계약(EPC) 방식으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향후 동남아 발전소 추가 수주 가능성이 점쳐졌다.

마루베니는 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같은 용량을 기존 업체에 맡기는 ‘1+1 관행’을 깨고 1.5배(약 100만㎾) 이상 용량의 발전소를 짓는 방안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건의하면서 한국 기업들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100만㎾급 발전소는 대구광역시(인구 약 250만명) 규모의 도시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마루베니는 발전단지의 총 전력 생산량을 당초 66만㎾에서 2.5배 커진 약 166㎾ 규모로 키워 생산 단가를 낮추고 전기료 인상을 억제하겠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중부발전 관계자는 “세부적인 계약과 사업 추진이 확정된 게 아니다”며 “이번 주 중 마루베니 측과 만나 사업 방향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유력 대기업들의 생산기지 이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 초부터 동남아 인프라 투자 사업을 추진해왔다. 정부 차원에서 기술과 금융 지원도 이어졌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업체들과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이 동남아 시장에 진출, 경쟁이 격화됐다.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은 현지 정부 발주 사업에 정책 금융을 제공하면서 일본 지분 참여, 일본산 기자재 사용을 요구하는 등 자국 업체 지원 및 보호책을 강화했다. JBIC는 동남아 각국 정부와 협약을 맺고 일본 업체가 보증을 따로 받지 않도록 하는 ‘JBIC엄브렐러’라는 제도를 마련했다.

업계에선 우리 기업들의 동남아 시장 확대를 위해선 정부 간 협약, 정책 금융 지원 등 비가격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체 간 추가 수주 계획 등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를 구성하고 동남아 국가와의 정부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대훈/조미현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