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 업계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매출이 급감하거나 대규모 적자 수렁에 빠져 인력 감축에 나서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보릿고개가 이제 막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들의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장비를 생산하는 디엠에스는 올 들어 3분기까지 66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년 동기 1924억원의 34%에 불과한 수치다. 영업손익은 작년 같은 기간 220억원 흑자에서 192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LCD 대비 부가가치가 높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생산하는 에스엔유프리시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 회사의 올 3분기까지 매출은 386억원. 전년 동기 534억원 대비 27% 감소한 규모다. 영업손실도 지난해 24억원에서 90억원으로 3배 이상으로 불었다. 반도체와 LCD 장비를 모두 만드는 주성엔지니어링도 같은 기간 매출이 723억원에 그쳐 작년 2641억원에서 3분의 1 토막 났다. 영업손실은 472억원을 기록했다.

이렇게 주요 기업의 실적이 곤두박질친 것은 장비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비 기업들의 실적은 삼성전자와 LG전자, SK하이닉스 등 수요 기업들의 투자 사이클에 따라 희비가 갈리게 마련”이라며 “올해는 대기업들마저 글로벌 경기 불황 우려로 투자를 주저하거나 늦추는 분위기여서 실적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가 화성에서 짓고 있는 시스템반도체 17라인 완공 시기를 늦추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라고 덧붙였다.

벼랑에 선 장비 기업들은 당장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 돌파를 모색하고 있다. 각사의 올해 및 작년 3분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디엠에스는 종업원 수가 542명에서 339명으로 37% 줄었다. 에스엔유프리시젼은 353명에서 245명으로 30%, 주성엔지니어링은 712명에서 644명으로 9% 감소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3분기가 두 달여 지난 만큼 지금은 종업원 수가 더 많이 감소했을 것”이라며 “서로 만나면 ‘아직 살아 있구나’라는 자조 섞인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라고 푸념했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조정이 지금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경기 우려로 내년 상반기까지는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에 1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실제로는 메모리반도체 5조원, 시스템반도체 8조원 등 13조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본다”며 “내년 투자 규모는 6조5000억~8조원으로 큰 폭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