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레타 '박쥐'의 소프라노 박은주 씨 "최고음 소화하며 춤까지…피를 말리죠"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들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아리아’가 있다. 한계음이라는 하이 F음을 여러 번 소화하며 초절기교를 부리거나, 극단적으로 높은 음역에서 격정적 연기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알반 베르크의 마지막 오페라 ‘룰루’의 룰루, 도니제티의 비극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에 나오는 체르비네타 역 등이 그렇다.

이 모든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박은주 씨(46·부산대 음대 교수)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2년간 독일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최고의 소프라노’라는 찬사를 받아온 그는 오는 28일부터 내달 1일까지 국립오페라단 50주년 기념작인 오페레타 ‘박쥐’에서 능청스러운 부인 로잘린데를 연기한다.

“대사와 노래가 섞여 있어 발성법을 자유자재로 바꿔야 하는 게 ‘박쥐’의 매력이자 과제예요. ‘박쥐’는 제가 유일하게 부르는 오페레타죠. 아델레 역은 20대 때 30번도 넘게, 로잘린데 역은 지금까지 30~40번 한 것 같네요.”

오페레타는 대사와 춤이 섞인 ‘작은 오페라’.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920년대 경제 공황기 오스트리아 빈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영, 속물 근성을 풍자한 ‘박쥐’는 주옥 같은 아리아로 가득하지만 독일어 대사와 춤이 섞여 있어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못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이래 처음으로 독일어 대사를 살린 오리지널 버전을 선보인다.

“독일에 처음 도착했을 땐 길 가는 사람을 연령대별로 붙잡고 똑같은 질문을 해봤어요. 모두 걸어다니는 회화책으로 보였죠. 독일어는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는데, 부산말을 아직 못 고쳤어요.(웃음) 오리지널 독일어로 공연한다고 해서 안심했죠.”

부산대 성악과와 독일 쾰른국립음대 성악과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친 그는 브레머하펜 극장에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주역 오디션을 통해 데뷔했다. 1995년 자신을 루치아 역으로 발탁해 오페라 가수로 이끌었던 페터 그리체바흐 당시 브레머하펜 극장장과 8년 뒤 결혼했다. 남편은 현재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국립극장장이다.

“부산 여자 기질이 있어 큰 일을 앞두고 벌벌 떨기보다 일단 부딪쳐서 해보고, 뭐든 되게 하는 성향이 강해요. 동료들이 쉬는 10~20분에도 화장실에서 혼자 연습하고, 남들 다 노는 휴일도 쉬지 않았죠.”

그는 노래를 ‘밥 먹는 일’에 비유했다. 성실함을 동력으로 지금까지 ‘돈 조바니’ ‘롱쥐모의 우편배달부’ ‘사랑의 묘약’ 등 수많은 레퍼토리의 주역으로 뛰었다. ‘진주같이 유려하면서도 힘 있고 균형잡힌 목소리’라는 평을 받으며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2003년 최고 성악가, 2009 독일 브레멘·함부르크 최고 소프라노로 뽑혔다.

“노래는 사치가 아니라 생활이에요. 조금만 성공하면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구는 경우도 있는데, 오페라 가수들은 인간의 다양한 삶을 파고들어야 하는 만큼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죠.”

독특한 배역으로 유명한 소프라노지만 그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한다. 요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에서 한국 드라마를 켜놓고 요리를 한다. 10년 정도 쉬는 날 없이 무대를 찾아다니다 2004년 쓰러져 7개월 동안 무대를 떠났던 게 자극이 됐다. “항상 감기 걸릴까봐 털신을 신고, 털옷을 입고 공항에서 쪽잠을 자며 10년을 지냈더니 방전이 되더라고요.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젠 저를 위해 노래하게 됐어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