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독일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뒤로 80년 가까이 거실의 중심을 지켜온 것은 TV였다. TV는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였고 가장 값싸게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구였다.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1956년 5월12일 첫 TV 방송이 전파를 탄 뒤로 TV가 다른 매체에 자신의 자리를 내줬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굳건했던 TV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불어닥친 ‘제1차 스마트 혁명’ 때문이다. ‘손 안의 컴퓨터’로 정보 검색, 게임, 동영상 감상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열광했고 한때 혁신의 최일선에 서있던 TV는 어느덧 ‘올드 미디어’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TV의 반격이 시작됐다. 지금까지의 TV가 단순히 방송을 전달하는 매개체에 불과했다면 최근 등장하는 ‘스마트TV’는 이보다 한 단계 진화했다. 보고 싶은 방송이나 영상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인터넷 검색, 쇼핑, 게임 등도 가능하다. 거실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과거에는 단점이었지만 지금은 초고속 네트워크 덕분에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어주는 ‘미디어 허브’의 역할도 갖게 됐다. TV를 중심으로 콘텐츠(Contents), 플랫폼(Platform), 네트워크(Network), 디바이스(Device)를 연결하는 C-P-N-D 생태계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스마트폰에 이어 스마트TV에서 비롯된 ‘제2차 스마트 혁명’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사용자 중심의 새로운 서비스

스마트TV는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기존 TV에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PC 기능을 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C처럼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실행할 수 있도록 중앙처리장치(CPU)도 내장했다. 스마트폰이 일반 휴대폰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스마트TV도 네트워크와 CPU를 통해 기존 TV에서는 할 수 없었던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내려받을 수 있는 것처럼 스마트TV도 앱을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통신산업의 판도는 물론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처럼 스마트TV의 확산도 우리가 TV를 이용해왔던 방식을 크게 바꿔놓을 전망이다. 그동안 TV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송을 보는 수동형 매체에서 원하는 방송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양방향 매체로 발전했다. 하지만 TV 앞에 가만히 앉아 영상을 본다는 점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반면 스마트TV는 사용자가 더 많은 주도권을 갖게 된다. 사용자 중심의 새로운 서비스가 펼쳐질 것이란 얘기다.


○스마트TV는 ‘미디어 허브’

스마트TV의 발전 방향은 ‘미디어 허브’다. 과거 TV가 가정에서 사람들을 거실로 한데 모으는 역할이었다면 스마트TV는 유무선 네트워크 덕분에 이 범위가 무한정으로 확장된다. TV에 저장된 영상이나 음악을 원거리에서 스트리밍 방식으로 보거나 들을 수 있다. 클라우드 서버의 역할도 한다. 가족들이 바깥에서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자동으로 TV에 저장된다. 저녁 식사를 끝낸 후 거실에 둘러 앉아 사진을 보며 웃음꽃을 피울 수도 있는 셈이다.

지난 14일 서울에서 열린 ‘스마트TV 글로벌서밋 2012’에서 허득만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상무는 스마트TV의 다섯 가지 발전 키워드로 △개인별 맞춤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인텔리전스 △유무선 인터넷을 하나로 통합하는 ALL-IP 서비스 △클라우드 기반의 N스크린 서비스 △집안 가전기기를 통합하는 스마트 홈 △건강 관리가 가능한 스마트 헬스케어를 꼽기도 했다.

특히 TV는 전 세계적으로 5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다. 4000억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광고 시장도 확보하고 있다. TV 제조업체인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물론 전 세계 통신사와 방송사,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도 스마트TV 시장을 주목하는 상황이다.

○주도권 차지하려 물밑 싸움 치열

스마트TV 시장은 아직 명확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대로 된 ‘판’이 짜여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 업체들이 제각각 시장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물밑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초 삼성전자와 KT가 스마트TV에 대한 인터넷 연결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것도 스마트TV 시장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신경전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기도 한다. 스마트TV 제조업체들이 기기에 내장한 스마트TV 기능과 케이블TV·IPTV 업체들이 셋톱박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능들이 중복되는 경우도 있다. 스마트TV 기능과 셋톱박스 기능을 모두 이용하려면 양손에 리모컨을 쥐고 조작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생겨난다. 이 같은 과도기가 어떤 방향으로 마무리될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찰거리가 될 것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