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기회의 균등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고 경제성장에도 기여하는 포용성장(Inclusive Growth) 정책으로 가야 한다.”(이현훈 강원대 교수)

“경제에 무슨 민주화가 있느냐. 성장을 하면 고용과 복지는 저절로 따라온다.”(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

아시아금융학회와 포럼4.0은 14일 서울 소공동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5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경제개발 계획의 공과를 평가하면서 새로운 발전 모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특히 경제 성장을 통해 소득 분배를 개선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경제민주화 바람에 잇단 우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고려대 교수)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현명하고 올바른 정치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한국경제는 다시 성장동력을 회복해 소득분배도 개선되는 선순환으로 가느냐, 아니면 높아지는 분배욕구에 부응해 성장둔화와 소득분배 악화라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질 것인가 중대한 기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이현훈 강원대 교수는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포괄하는 새로운 경제발전 모형을 제시했다. 그는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이 상생하는 ‘포용성장’과 경제성장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이 결합한 ‘녹색성장’을 새로운 성장전략의 축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용성장을 위해 교육과 고용 기회의 형평성을 높이고, 생산적 복지를 강화해 경제성장과 사회적 발전의 시너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경제민주화’가 거센 바람을 일으키는 데 대해 질타도 이어졌다. 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던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경제에 무슨 민주화가 있느냐”고 반문한 뒤 “기술 개발과 수출을 통한 성장이 있으면 고용 등 복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좌승희 서울대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경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좌 교수는 “기업의 성장 없는 자본주의 발전은 불가능하다”며 “기업이나 경제는 민주화 대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최근 나오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재벌 때리기’로 변질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이다. 김인철 성균관대 교수(차기 경제학회장)도 “한국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로 혜택을 본 대표적인 국가”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있긴 하지만 시장 경제에 의한 자원 분배보다 나은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고도성장의 원천은 수출중심정책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신경제 5개년 계획(1993~1997년)을 포함해 정부 주도로 1962년부터 1997년까지 총 7차례, 35년에 걸쳐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우리나라가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세계 경제발전 사상 전대미문의 위업을 달성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62년 87달러에서 5개년 계획이 끝난 1997년 1만1505달러, 2011년에는 2만2489달러로 높아졌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축사에서 “경제개발 착수 반세기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며 “영국이 200년, 미국이 150년에 걸쳐 이룬 성장을 한국은 50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압축 성장했다”고 말했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1960년대 수출중심 공업화 정책이 자본 기술 부족과 협소한 국내시장의 제약을 한꺼번에 해결해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5개년 계획 추진과정에서 기업가들에게 특혜를 부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달성한 성과에 의해 특혜가 재분배되도록 하는 시장친화적 정책 기조를 유지한 게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개발 계획이 실시되는 과정에서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한국을 본보기로 삼는 개발도상국도 외자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 1967년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분별한 외자도입으로 큰 시련을 겪었다. 1966년 500만달러에 불과했던 외화차관은 1969년 1억7600만달러로 무려 34배나 급증했다. 민간의 외채원리금 상환액도 1971년 2억달러에 달했다. 그 결과 외자도입 기업들이 부실화되고 이들 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은행의 여신 증가와 부실로 이어졌다.

서정환/김유미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