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산을 볼 수 있어 감사한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매섭지만 숲과 나무들 사이로 일렁이는 산세를 느낄 수 있어 좋다. 딱딱하고 차가운 외부의 도전이 찾아와도 항상 산에 몰두하니 치유의 해법도 보이더라.’

힘찬 필선으로 한국화의 내공을 보여주는 한진만 씨(64·홍익대 미술대학원장·사진)의 ‘산사랑 미학론’이다.

1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천산(天山)’을 주제로 개인전을 여는 그는 실경산수화의 맥을 이으며 현대 한국화의 발전을 이끈 인물. 마이산 청량산 금강산 히말라야 등 수많은 산을 오르며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이 표현하는 부감법으로 산세의 영험한 기운과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왔다.

내년 2월 정년퇴임에 앞서 기념전 형식으로 마련한 이 전시회는 그의 ‘산사랑’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제자들이 기획한 그의 영상 작품전도 나란히 소개된다.

한씨는 “산은 지구의 축소판이며 우주의 기운을 담고 있기 때문에 경건함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준다”고 말했다. “전통 진경회화 말고 내 이야기를 화면에 풀어내자고 마음먹은 게 1990년대 말쯤 됩니다. 산 이야기를 해서 좋은 작가가 되리라고 생각했죠. 작업실을 고향인 강원도 춘천 북산면으로 옮긴 것도 그래서인데 산의 기운을 붓으로 풀어내고 싶었던 거죠.”

2008년 가을에는 히말라야를 찾았다. 산 곳곳을 사생하려는 과욕에 고산병까지 얻어 고생했다. “히말라야의 경치는 이승의 경치가 아닌 것 같았어요. 새와 나무들과 대화하며 산의 신비로움을 온몸으로 느꼈죠. 히말라야 눈밭에서 하늘을 쳐다보니 금강산의 산세가 스치더군요. 자연은 어디든 똑같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산행을 다녀온 후 ‘천산(天山)’ 시리즈를 시작했다. 히말라야의 경관에 금강산, 마이산 같은 우리 산 풍경을 곁들인 독특한 수묵화 ‘지구 산수화’를 그린 것이다. 지구는 어차피 하나인데 나눌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국내외 산을 한 화면에 담아냈다.

그에게 산은 채움과 비움을 동시 담아내는 융합의 공간이다. 산의 형상을 그리기보다는 혼과 기에 주안점을 둔다. 한씨는 “옛 동양화 거장들의 붓 끝에 머금은 먹이 하얀 종이 위를 반복하며 형상을 수놓는 동안 채움과 비움이 서로 얽히며 상생하는데 산을 그리다 보니 그런 해석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춤추듯 기운찬 산의 모습은 검무하듯 그리는 ‘검필법(劍筆法)’에 의해 탄생했다. 검필법은 당나라 서예가 오도자가 처음 개발한 후 맥이 끊긴 상태지만 그가 현대적 기법으로 되살려낸 것. 원심력의 운필과 필선읕 통해 바람을 만들고, 구름을 형상화했다. “5년 전부터 검도를 시작한 후 제 몸의 기운을 화면에 반영했습니다. 심신도 좋아졌고요. 건강해야 작품이 잘 나오지요.” (02)734-04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