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계의 거목 배우 장민호 씨가 2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8세.

1924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7년 조선배우학교를 졸업한 뒤 그해 극단 원예술좌의 창단공연 ‘모세’로 데뷔했다. 1950년 이해랑 연출가가 재건한 국립극단 전속극단 신협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연극인의 길을 걸었다. 신협 시절 출연한 작품마다 배우 가운데 가장 먼저 대본을 외워 ‘암기 민호’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후 대표작 ‘금삼의 피’ ‘파우스트’ 등을 비롯해 230여편에 출연했고, 영화 ‘백치 아다다’ ‘태극기 휘날리며’ ‘천년학’에도 나왔다.

1967년 국립극단장으로 취임해 5년의 임기를 마친 뒤 1980년부터 10년간 국립극단장을 또 맡아 총 15년 동안 국립극단장을 지냈다. 지난해 2월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국립극단이 새로 개관한 극장의 이름을 ‘백성희장민호극장’으로 지은 것도 그에 대한 사랑과 헌정의 의미였다. 그는 개관작 ‘3월의 눈’에 단짝 배우 백성희 씨와 함께 출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최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출연 배우 중 가장 먼저 대본을 외울 만큼 열정적이었다. 40년에 걸쳐 파우스트를 네 번 공연해 ‘파우스트 장’이란 별칭도 얻었다. 한국연극협회 이사,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예술상, 국민훈장 목련장, 동랑연극상, 호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그는 “배우에게는 인생의 나이가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배우는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주어진 배역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지난해 6월 재발한 페기흉으로 병상 신세를 지면서도 끝까지 손에서 대본을 놓지 않았다.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문병을 갈 때면 “다음에 올 때 책(연극대본)을 갖다달라”며 공연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보여줬다.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빨리 일어나서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지만 끝내 마지막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유족은 부인 이영애 씨와 1남1녀.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5일 오전 10시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연극인장으로 열린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