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사진)의 사임설이 여의도 금융가에 돈 것은 지난 7월이었다. “펀드 운용 전략을 놓고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과 갈등이 심해져 구 부회장이 곧 회사를 떠날 것”이란 내용이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측이 당시 “뜬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했던 구 부회장의 사임설은 결국 현실이 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달 31일 구 부회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고 1일 밝혔다. 구 부회장의 향후 거취는 정해지지 않았다. 구 부회장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심신이 지쳤다”며 “당분간 쉬면서 무엇을 할지 찾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운용업계 ‘리더’ 지위를 사실상 상실한 데 대해 구 부회장이 책임을 진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07년 선보인 ‘인사이트’ 펀드에서 대규모 손실을 내 브랜드 파워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후 펀드자금 유출이 지속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일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총 12조1204억원으로 올 들어서만 2조2131억원(15.44%)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박 회장과의 갈등설에 더 무게를 둔다. 그러나 미래에셋자산운용 측은 이를 강력히 부인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구 부회장 본인이 먼저 ‘쉬고 싶다’는 의사를 박 회장에게 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 이후에도 차량 등 을 제공할 예정이고 박 회장도 ‘동생과 같은 사람’이라며 여전히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며 “두 분 사이에 갈등이 크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구 부회장을 잘 아는 한 금융투자업계 최고경영자는 “1964년생으로 아직 50세가 되지 않은 구 부회장이 종종 ‘나만의 꿈을 펼치고 싶다’는 말을 했다”며 “구 부회장이 독자 사업을 펼치기 위해 회사를 나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구 부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옛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했다. 1997년 압구정지점장 시절 박 회장과 함께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창립한 8명의 창업멤버 가운데 한 명이다. ‘창업 공신’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박 회장이 한때 “한국에서 운용을 가장 잘 하는 천재”라고 치켜세울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2001년에는 국내 최초의 개방형 뮤추얼펀드 ‘인디펜던스’와 환매수수료 없는 선취형 뮤추얼펀드 ‘디스커버리’를 잇따라 선보이며 운용업계를 선도해 나갔다.

구 부회장의 퇴진으로 창업멤버들의 세대 교체 여부와 시기에 금융투자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 정점에 최현만 미래에셋생명 수석 부회장이 있다. 최 수석 부회장은 지난해 미래에셋증권 총괄 대표이사 부회장에서 ‘총괄 대표’ 직책을 잃으며 퇴진 여부가 화제가 됐다. 지난 6월에는 미래에셋생명의 대표이사 수석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회사 키우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한편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날 손동식 주식운용부문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내용을 포함한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구 부회장의 퇴진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정상기 부회장과 장부연 경영관리부문 대표체제로 운영된다. 행복은퇴 전도사로 불리는 강창희 부회장도 곧 퇴임할 계획이다.

송종현/안상미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