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선發 경제위기 이미 곁에 와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전대미문의 금융·기업 구조조정으로 100만명이 넘는 실업자를 발생시켜 신빈곤층을 양산했다.

수십년간 국민의 피와 땀으로 가꿔온 알짜기업들의 자산도 헐값으로 외국에 매각됐다. 제일은행 한미은행 등은 100% 외국에 매각되고 삼성전자 현대차 포항제철 외환은행 국민은행 등 국내 간판기업의 주식도 외국인이 절반 이상을 보유하게 됐다.

말이 한국기업이지 내용상으로는 이미 외국기업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위기 이전 1962~97년 중에는 연평균 8.9%로 고도성장해 오던 한국경제가 위기 이후 1998~2011년 중 연평균 4.2% 성장으로 성장동력이 반토막 났다는 점이다. 그 결과 고용사정이 악화되고 소득불안도 높아지는 등 양극화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당시 외환위기를 들여다볼 때마다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1997년 한국에서 대선이 없었다면 위기가 왔을까 하는 점이다. 삼류정치가 일류경제를 압도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변수임에 틀림없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97년 하반기 들어 기업설비투자와 민간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1997년 3분기에 이미 전기 대비 -7.7%였던 기업설비투자 증가율은 4분기 들어 -13.8%로 악화되고 이듬해 1분기에는 -28.6%까지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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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3분기 전기 대비 0.4%였던 민간소비증가율은 4분기 들어 -1.7%, 이듬해 1분기에는 -12.7%로 악화됐다. 그 결과 전기 대비 경제성장률이 1997년 3분기 1.0%에서 4분기 -0.4%, 1998년 1분기에는 -7.0%로 추락했다.

수출도 증가해 경상수지도 개선되고 있었는데 왜 이 정도로 설비투자와 민간소비가 악화됐던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신경제정책 추진에 따른 과잉투자로 기업부도가 증가하던 점도 중요한 변수였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보 기아 사태 등 경제이슈를 두고 여야가 대타협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반정부 강경시위, 노조파업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사생결단의 충돌과 정쟁이 가열되면서 불확실성이 커져서 기업투자와 민간소비 심리가 급속히 위축됐다는 점이다. 투자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기가 냉각되는 가운데 태국 위기 발생이라는 외부충격이 더해지자 외국자본이 급격히 유출되면서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최근의 투자심리 위축도 보통이 아니다. 올해 2분기와 3분기의 전기 대비 설비투자 증가율은 각각 -7.0%와 -4.3%를 기록했다. 그 결과 제조업 부가가치 증가율도 두 분기 모두 -0.2%를 지속했다.

[다산칼럼] 대선發 경제위기 이미 곁에 와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동향지수가 100 이하를 지속하는 등 소비심리 위축도 지속되고 있고 경제민주화 미명하에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정치권의 재벌개혁 주장으로 대기업들은 내년 사업계획도 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경제가 안 좋은 때 내부를 추스르기는커녕 정쟁만 가열되고 있는 꼴이 꼭 1997년 당시의 모습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성장률은 한은 전망 2.4%보다 낮은 2.1% 내외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차 석유파동기인 1980년의 1.9%, 외환위기 때인 1998년의 -5.7%,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의 0.3%를 제외한 1962년 경제개발계획 추진 후 지난 50년간 가장 낮은 성장률이 된다.

이미 위기는 우리 곁에 와 있다.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등 정쟁을 접고 하루 빨리 경제살리기로 돌아와야 한다.
오정근 < 고려대 교수·경제학, 아시아금융학회장 ojunggun@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