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엄마를 죽였다.” 영화에서의 대사가 아니다. 2년간 치매 병수발을 들다 아내를 죽인 78세 남편이 45세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 말이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건설회사 임원으로 퇴직한 뒤 아들 부부, 손자와 살던 이모씨에게 2년 전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찾아왔다. 아내 조모씨(74)의 치매였다.

아내를 아꼈던 이씨는 아내와 함께 산책을 다니고 식사 때마다 직접 떠먹여 주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러나 1년 전부터 아내의 치매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자신이 바람을 피운다고 화를 내면서 조실부모했던 자신을 두고 “부모 없이 막 자란 놈”이란 막말까지 했다. 괴로움을 참지 못해 이전에도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던 이씨는 지난 19일 밤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 목을 조르고 말았다. 경찰은 30일 이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은 여러 가지 고통에 시달린다. 언제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는 환자 때문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환자를 돌보느라 쉴 수가 없고, 경제활동도 힘들어지면서 대부분 가정살림도 어려워진다.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수시로 거친 언행을 하는 환자를 24시간 돌본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사회적 시선 때문에 남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도 없어 가족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보호자조차도 점점 우울증을 겪다가 극단적인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 치매는 단순한 질병이 아닌 가정 파괴자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보건복지부는 한국의 치매 환자 수가 올해 53만4000여명, 2025년에는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치매를 일찍 발견해 1년만 증상을 늦춰도 20년 뒤 치료비용을 10%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부분적으로 국가 지원이 있고 지난 7월에는 정부가 2차 치매관리 종합계획도 발표했지만, 여전히 치매 환자를 돌보는 주된 책임은 환자의 가정에 있다. 보호센터 등 지역사회 내에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진국과는 거리가 있다. 환자 가족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 전문 간호와 요양서비스 등 사회복지서비스가 확충되지 않는다면 언제 또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 암울하다.

박상익 지식사회부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