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NYSE)와 골드만삭스 등 금융회사가 밀집한 뉴욕 남부 맨해튼. 28일 밤(현지시간) 강한 바람 소리와 함께 크레인(기중기)이 굉음을 뿜어냈다. 인부들은 모래주머니를 쌓고, 크레인은 콘크리트를 들어올려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이 지역을 강타할 초강력 허리케인 ‘샌디’로 허드슨강이 범람할 것으로 보고 제방을 쌓는 작업에 나선 것.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3m 높이의 강물이 월스트리트 지역에 밀어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같은 시간 워싱턴DC 인근의 버지니아주 비엔나시. 2005년 ‘카트리나’보다 더 강한 허리케인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뒤늦게 비상식량을 구하러 나섰다. 슈퍼마켓에서 빵과 생수가 품절된 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주유소에는 기름을 채우려는 차량이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미국 동부 경제 ‘올스톱’

허리케인 샌디가 천천히 회복하고 있는 미국 경제에 또 하나의 복병으로 등장했다. 인구 밀집지역이자 미국 경제의 중심지인 동부 지역이 허리케인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가면서다.

비행기, 기차, 지하철 등 물류와 교통은 28일 저녁을 기점으로 모두 ‘올스톱’됐다. 뉴욕, 뉴저지, 버지니아, 코네티컷, 펜실베이니아 등 동부 지역 대부분 주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수백만명의 주민들에게 강제 대피령을 내렸다. 최대 풍속 시속 85마일(약 140㎞)의 샌디로 인해 1000만가구가 정전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뉴욕 워싱턴DC의 모든 공항은 이날 저녁부터 비행기 이착륙을 금지했다. 동부지역을 연결하는 8000여편의 비행기가 결항됐다. 구글은 29일 뉴욕에서 열 계획이던 스마트폰 신제품 발표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다른 기업들도 이번주로 예정했던 각종 행사와 경영활동을 모두 취소했다.

금융시장도 얼어붙었다.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9일 주식 및 옵션 거래를 중단키로 결정하면서다. 뉴욕 주식시장이 문을 닫는 건 2001년 9·11테러 이후 11년 만이다. 당초 NYSE는 객장만 폐쇄하고 전자거래는 계속하기로 했지만 “시장을 일부만 닫는 것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는 고객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아예 장을 쉬기로 했다.

씨티그룹 등 주요 은행들도 침수 예상 지역 지점을 모두 닫기로 했다. 대신 고객들이 다른 은행의 현금자동인출기(ATM)를 이용해도 수수료를 면제해줄 방침이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도이체방크 등 주요 투자은행(IB)들은 본사 직원들을 모두 재택근무하도록 했다.

◆대선 변수로 작용하나

허리케인 샌디는 1주일 남은 미국 대선(11월6일)에 돌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선의 승부를 가를 경합주인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이 샌디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들면서 조기 투표와 막판 유세가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버지니아와 인접한 메릴랜드주는 29일 조기 선거를 중단키로 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샌디 여파로 조기 투표가 차질을 빚으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불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흑인과 히스패닉의 조기 투표 비율이 백인보다 높다. 미국은 대선 당일이 공휴일이 아니어서 흑인과 히스패닉은 조기 투표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ABC방송의 지난 27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11%가 조기 투표를 했다. 이들의 오바마 지지율은 57%로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40%)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허리케인 피해가 ‘재난’ 수준으로 커질 경우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롬니가 불리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교통 두절, 정전, TV 광고 중단 등으로 버지니아 오하이오 등 경합주에서 막판 총력전을 펼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 반면 오바마는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다. 오바마는 29~30일 유세일정을 취소하고 백악관에서 허리케인 대비 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오바마가 재난에 대처하는 리더십을 보인다면 초박빙 접전 상황에서 부동층의 표심을 확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워싱턴=유창재·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