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사업부문제(매트릭스 체제) 예찬론자다. 매트릭스는 지주 내 계열사들이 자산관리(WM) 기업금융(CIB) 부문 등을 통합 운영해 업무효율을 높이는 조직체계를 말한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기자들에게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은 모두 매트릭스 체제를 갖추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성장하려면 매트릭스 체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매트릭스를 갖추면 은행 부실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무렵 우리은행 우리투자증권 등 계열사에 사업부문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의 공문도 내려보냈다. 시행시기도 2013년 1월로 못박았다.

공문대로라면 약 두 달 뒤 우리금융의 매트릭스 조직이 가동돼야 한다. 한데 지금 우리금융 내부는 조용하다. 매트릭스 도입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분위기다. 최고경영자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일이 웬일인지 오리무중이 돼버린 것이다.

1차 이유는 노조다. 우리금융의 한 관계자는 “매트릭스 체제 도입에 대해 노조의 반발이 크다”며 “노조의 동의 없이 추진할 수는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이 매트릭스 도입 공문을 내려보냈던 지난 여름에도 노조의 반대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달라진 시절’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을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우리은행 노조가 가입한 금융산업노동조합의 조합원 수는 9만여명에 이른다. 표셈을 하다보니 ‘서두르지 말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의 임기는 2014년 3월까지로 많이 남았다. 그런데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찌될지 모른다”는 식의 사고가 그룹 내에 팽배해 있다. 이 회장 입장에선 최고경영자로서의 소신을 꺾어야 할지 모르는 힘든 상황에 맞닥뜨린 셈이다. 하지만 우리금융 관계자들은 익숙한 표정이다. 한 계열사 직원은 “우리금융이 민영화되지 않는 이상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주요 임원 자리를 친소관계에 따라 나눠주지 않겠느냐”고 자조했다. “매트릭스 도입이 기약 없는 상황”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이 이렇게 된 책임이 우리금융 내부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상은 금융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