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미국 시중 은행을 상대로 ‘주택담보대출’ 사기 행각을 벌이던 나이지리아 국제 금융사기단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것처럼 미국 시중 은행 수십 곳을 속여 수백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나이지리아인 O씨(39) 등 4명을 구속하고 같은 혐의로 강모씨(32)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O씨 등은 한국·미국·나이지리아 등 3개국에 거점을 둔 국제 금융사기단을 꾸린 뒤 지난해 1월부터 지난 7월까지 미국 시중 은행을 상대로 68회에 걸쳐 1100만 달러(한화 122억원)를 받아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사기 행각으로 BOA를 비롯해 뱅크오브오리엔트, 샌프란시스코파이어크레딧유니언 등 미국 시중 은행 39곳이 피해를 입었다.

O씨 등은 이들 은행이 국내 은행 대출상품과 달리 대출계약서를 팩스로 받은 뒤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회보장번호, 계좌번호 등만 구두로 질문하는 식으로 본인 확인을 간소화한 주택대출상품을 보유한 점을 노렸다.

이들은 미리 빼돌린 미국 국적자의 개인정보에 한국·말레이시아·일본 등 6개국에서 수집한 계좌번호를 적은 ‘가짜 대출계약서’를 은행에 제출했다. 해당 은행은 이들이 조직원들에게 착신전환 시켜 놓은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뒤 2~3일 만에 대출금을 송금했다.

이렇게 송금된 대출금은 한국 등 각국 인출책을 통해 나이지리아로 재송금된 뒤 조직원들에게 나눠졌다. 미국·나이지리아팀은 대출계약서 제출, 착신전화 해킹 등을, 한국팀은 대출금 인출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한국팀은 가로챈 대출금이 수출거래로 인한 것인양 위장하려고 동대문에서 싸구려 의류를 구입해 중국으로 배송하는 수법으로 수사망을 피하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해 8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공조 요청으로 수사를 개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반인들도 ‘외환계좌를 개설해 자금을 인출해 주면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갈 우려가 있다”며 “국제사회의 사이버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는 국적과 국경을 불문하고 외국 법 집행기관과 긴밀히 공조해 엄정하게 사법처리하겠다”고 경고했다.

나이지리아 국제 금융사기단은 그동안 무역회사의 전자우편을 해킹해 수출입대금을 가로채거나 “염색한 달러인 일명 ‘블랙머니’를 지폐로 바꿔주겠다”고 속여 약품구입비 명목으로 금품을 가로채는 등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