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불과 2개월여 앞두고 최근 이슈로 떠오른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 Line) 논란은 우리 사회의 안보불감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에 대한 발언이 있었다는 의혹이 도화선이 됐다.

NLL이란 남과 북 사이의 해상 경계선을 말한다. 1953년 7월27일 6·25전쟁의 휴전협정이 발효될 때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은 지상에서의 군사분계선을 휴전협정 당시의 군사 접촉선으로 합의해 확정지었다. 그러나 해상에서의 경계선은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유엔군은 한반도 전 해역과 공역 전체를 사실상 장악해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상에서와 같이 접촉선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북한의 전 해안은 유엔군에 봉쇄당할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그해 8월30일 유엔군사령부(사령관 마크 W 클라크 미 육군대장)에서는 서해와 동해에서의 유엔군 측 함정과 항공기 활동의 북방 제한선, 즉 NLL 이북에서의 유엔군 함정과 항공기 활동을 제한시키는 방침을 정해 이를 공산군 측에 통보하고 선포했다.

당시 유엔군사령관은 해상 및 공중에서의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충돌과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유엔군 측의 해상과 공중 초계활동의 범위를 NLL 이남으로 제한시킴으로써 남과 북 사이의 실질적인 휴전을 보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1953년 8월30일 선포한 남북 간 실질적인 해상군사분계선인 NLL은 동해는 지상군사분계선을 평행으로 연장한 선을 기준으로 했으며 서해에서는 당시 영해기준 3해리 및 서해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5개 섬)와 북한의 옹진반도 중간선을 기준 삼아 북측에 통보했다. 따라서 북방한계선은 휴전협정 규정의 의미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해상에서의 불분명한 영역을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보완한 것이다.

또한 1990년 12월12일 제3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한국은 “불가침의 영역은 1953년 7월27일자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에 따라 남과 북이 각기 관할해 온 영역으로 한다”고 제의했으며 그 결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1조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27일자 군사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유엔군사령부가 북방한계선을 공산군 측에 통보한 이후 북한은 20년 동안 어떤 이의도 제기한 적이 없었으나 1973년부터 서해 5도 주변 수역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면서 고의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최근 빚어지고 있는 NLL 논란은 2006년 6월16일 노 대통령이 육해공군 본부가 위치한 계룡대 군 간부 강연에서 비롯됐다. 당시 노 대통령은 “NLL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 공존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그동안 NLL 수호를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린 수많은 젊은이들, 특히 죽음을 무릅쓰고 이를 지켜온 군과의 갈등을 유발시켰던 것이다.

그 이후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다녀온 뒤 노 대통령은 그해 10월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당대표, 원내대표 초청간담회에서 “서해 북방한계선은 어릴 적 땅 따먹기 할 때 땅에 그어놓은 줄이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남북 간에 합의한 분계선이 아니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NLL은 영토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런 NLL 포기 주장은 국가의 영토주권을 포기함은 물론 NLL 사수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한 수많은 호국영령과 이를 수호하기 위해 청춘과 열정을 바친 선배들에 대한 배신으로써 국군통수권자로서의 중차대한 범죄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하도 어렵다 보니 국가안보에 관한 사항이 때론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대선후보들의 경우는 다르다. 국가 지도자의 통치 철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덕목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것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한광문 <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수석연구위원 omoky@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