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저체중 주의보
다이어트를 현대인의 문제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세 여성들은 꽉 죄는 코르셋 탓에 수명이 짧아졌고, 일부는 실신할까봐 정신 번쩍 들게 하는 독한 향수를 갖고 다녔다. 19세기에는 ‘다이어트 흥행사’도 등장했다. 당시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저단백 다이어트, 음식물 오래씹기 다이어트 등이 유행했다.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도 동참했을 정도다. 그는 하루 건포도 한 알에 브랜디 한 잔, 식초에 절인 채소 따위를 먹는 식초 다이어트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요즘 다이어트 열풍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다이어트 종류와 방법이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두부 달걀 참치 사과 포도 콩 바나나 레몬 등만을 일정 기간 먹는 원푸드 다이어트는 고전에 속한다. 특수 비누로 하루 10여차례씩 샤워를 하거나 그림을 보면서 식욕을 억제하는 그림다이어트까지 나왔다. 덴마크 다이어트, 마녀수프 다이어트처럼 생소한 기법도 부지기수다. ‘1주일에 5㎏ 감량 보장’을 내세운 정체불명의 약도 수시로 개발된다.

살 빼기가 신드롬을 넘어 일종의 ‘질병’으로 변질돼 가는 듯한 분위기다.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날씬하다 못해 비쩍 마른 여배우는 “깜빡하면 망가진다”고 겁을 준다. ‘나는 다이어트 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개그까지 나오는 판이다. 일일이 음식 칼로리를 계산하고, 식사일지를 기록하며, 먹자마자 체중을 달아보는 것도 흔한 풍경이 됐다. 어쩌다 과식이라도 하면 자신의 의지 박약을 탓하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렇다보니 몸매에 민감한 20, 30대 여성의 저체중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그제 발표한 ‘한국인 체중변화’에 따르면 1998~2010년 20대 여성 저체중 비율이 12.4%에서 17.8%로, 30대 여성은 4.1%에서 8.3%로 크게 늘었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 지나치게 다이어트에 매달린 결과다.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지수(BMI)가 18.5 이하면 저체중, 25 이상이면 비만, 30 이상이면 고도비만으로 분류된다. 저체중은 비만 못지않게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몸에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며 스스로를 못 살게 구는 것이다.

《사상 최고의 다이어트》라는 책을 쓴 지나 콜라타는 “가장 좋은 다이어트, 건강한 사회란 누구도 체중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입에 맞는 음식을 적당히 먹고 운동으로 체중관리를 하는 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충분히 먹어도 부족할 임산부가 다이어트에 나서고 거식증 환자가 속출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건강을 잃으면 ‘몸짱’이 무슨 소용인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