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추석 연휴가 끝나면 약 20일간 여의도와 정부 청사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이 전쟁을 준비하고 기꺼이 나서는 전사들은 국회의원과 보좌진, 정부 공무원들, 산하기관의 임직원이다. 입법부가 국정의 다른 축인 행정부와 사법부를 상대로 견제와 감시의 불을 뿜는 국정감사는 화려하면서도 잔인한 기간이다.

의원들에겐 존재감을 한껏 과시하면서 뉴스메이커가 될 수 있어 국감은 그야말로 의정 활동의 백미에 해당한다. 농부에게 가을이 수확의 계절이라면 국회의원에겐 국정감사가 1년 농사를 얼마나 잘 지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바로미터일 수도 있다. 그런 만큼 보좌진과 함께 밤을 새워 준비하게 된다. 추석을 낀 연휴가 있었지만 의원회관엔 밤에도 불 켜진 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국감을 정기회에 하도록 하면서 꼭 10월에 하게 되다 보니, 높고 푸른 하늘은 국회에서는 그저 창밖의 풍경일 뿐이어서 10월은 국회 식구들에겐 유난히 잔인한 계절이기도 하다.

국감의 메뉴는 다양하다. 해마다 사회적 문제가 크게 클로즈업되는 것은 당연하다. 2009년에는 조두순 사건을 놓고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방식과 법원의 양형감각이 질타를 받았고, 2010년에는 난데없는 블랙아웃으로 전력의 안정적 공급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국감장에서 눈길을 끌기 위한 소품 동원도 다양하다. 동물에 대한 남획을 경고하기 위해 살아 있는 뱀이 등장한 일이 있는가 하면, 시위대의 흉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죽창으로 찌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의원실과 피감기관 사이의 자료 제출을 둘러싼 실랑이도 종종 일어난다. 의원실은 관련 자료를 참고하기 위해서도 광범위한 자료를 요구하게 되는데, 이게 때로는 불필요한 자료까지 기계적으로 요구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요즘에는 전자문서시스템 도입으로 종이로 출력된 자료의 양이 많이 줄었다. 그러다 보니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빨간 줄 그어가며 하는 자료 검토의 맛을 아쉬워하는 의견도 있다.

이번 국감은 대선 때문에 맥빠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지만 오히려 불꽃이 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자는 언론의 관심이 온통 대선 주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되다 보니 국감은 자연히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면에 후자는 각 당에서 국감을 통해 대선주자들과 관련된 검증 공방을 벌일 것이기 때문에 차분한 국감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예상이다.

국감장이 대선 승리에 집착한 정치투쟁의 장이 돼서는 곤란하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국내외적 경제상황 악화의 극복과 정치쇄신, 그리고 성폭력 등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시스템의 구축 등을 위해 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국민을 등에 업고 벌이는 이 ‘아름다운 전쟁’이 올해는 부디 정쟁을 떠나 민생을 돌보는 정책경쟁으로 마무리되기를 기원해 본다.

홍일표 < 국회의원(새누리당) 2008hip@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