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 해골티 알고보니…다리 절단에 3번 암수술한 CEO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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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0대 초반의 김유태씨(사진). 한양대 화학과를 나와 전공을 살려 대기업(KCC) 해외 구매부에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정도 평안했다. 대학시절부터 연애했던 부인과 남매 둘을 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장이었다. 그에게 불편함이 있다면 회식과 운동부족으로 인한 '똥배' 정도였다. 이처럼 평범한 그에게 '병마(病魔)'가 찾아오면서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뀌게 됐다. 작은 아들이 돌을 갓 지났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발바닥이 좀 아프다' 수준이었어요. 동네병원에서도 족저근막염 정도로 생각하고 치료를 받았죠. 그렇게 1년 가량 치료를 받았는데도 나아지지 않고 2003년에는 걷기 힘들 정도가 된 겁니다. 큰 병원에서 MRI를 찍었더니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그가 진단받은 암은 이름도 생소한 '활액막육종'이었다. 관절 주변 조직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병은 희귀병인데다 악성도가 높다. 5년 생존율도 50%가 미쳐 되지 않는데다 폐를 비롯한 여러 장기로 전이되는 확률이 80%를 웃돈다고 한다. 근본적인 치료 방법이 마땅히 없어 주로 다리를 절단한다. 그렇게 김유태씨도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신경조직에서 발병을 해서 오른발 전체와 뼈까지 전이됐더라구요. 어쩔 수 없이 오른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정말 망막했지만 당시 동료 직원들이 병원비를 모금하면서 도움을 받았고 가족들을 보면서 힘을 냈죠."
의족을 달고 재활운동을 하면서 복직까지 했고 그는 희망을 품었다. 그렇지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폐로 암이 전이된 것이었다. 2004년 9월부터 시작된 폐암 수술과 항암치료는 2년간 이어졌다. 2006년 10월 세번째 폐암수술을 앞두고 그는 회사에 사표까지 던졌다.
큰 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작은 아들이 걸음마를 하는 손조 차 잡아주지도 못했다. 가족들의 보금자리도 경기 광명의 내집에서 병원 근처 전셋집, 경기도 용인의 전셋집으로 옮겨갔다. 아내의 응원은 눈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위로가 되는 유일한 친구는 음악이었다.
"회사와 동료들에게 더이상 폐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번이나 폐 수술을 한다는 자체가 생존 확률이 높지 않다는 얘기었거든요. 병실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기껏할 수 있는 게 음악 듣기였습니다. 그도 쉽지 않았어요. 모든 음악에 감정이 이입되서 기분이 더 가라 앉더라구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락음악을 들으면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30대 중반의 가장. 죽음까지도 목전에 뒀던 중환자실의 이 환자가 희망을 들었다는 락음악은 제 2의 인생을 열게해줬다. 김유태씨는 현재 연매출 32억5000만원 올리는 패션, 악기 브랜드 전문수입업체인 '기사미(기분 좋은 사람들의 미소의 준말)'의 최고경영자(CEO)다. 2007년 집에서 온라인으로 유통했던 사업은 장애인기업종합센터에서 '1인 기업'으로 틀을 갖추고, 작년 8월 사무실과 쇼룸까지 갖춘 업체로 성장했다. 지난 29일 찾은 기사미의 용인시 중동 본사는 스튜디오 업무를 맡고 있는 아내를 비롯해 직원 3명을 둔 어엿한 회사로 커 있었다.
그는 현재 윤도현의 YB 드러머인 김진원씨, 이승철밴드의 이상훈씨가 그를 통해 드럼스틱을 공급하고 있다. 백두산의 유현상씨는 쇼룸을 직접 방문해 옷을 골라갈 정도로 팬이 됐다. KBS의 톱밴드의 밴드들과 지산록페스티벌의 밴드들도 그의 단골고객이다. 한국 유일의 이종격투기 경기인 로드FC에도 협찬하고 있다. 생사를 넘나들었던 그가 선택한 사업은 취미, 즐거움에 가까운 음악과 패션에 관한 것이었다.
폐암 수술을 마치고 용인 집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던 그는 음악을 들으면서 꿈꿔던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드럼을 배우면서 부피가 작고 고객들의 반품이 적은 아이템인 드럼스틱이 눈에 들어왔다. 삶의 희망을 느끼게 해준 락음악이 생계가 된 순간이었다. 과거 구매부에 있었던 경력을 살려서 미국의 2위 드럼스틱업체인 '실버폭스'를 설득했다. 내친김에 락패션의 상징인 해골티를 미국 현지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재미교포르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엑스비어(Xzavier)'라는 브랜드의 국내 독점권을 따기 위해 그가 락 음악에 마음이 흔들린 것처럼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설득했다. 장애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이메일과 초도물량의 유통결과를 보여주면서 독점권을 받았다.
물론 중국에서 수입하는 저가의 드럼스틱과 태국이나 동남아에서 수입하는 저가의 티셔츠, 동대문에 즐비한 해골티를 먹고 살기에 급급해 판매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단기간에 급성장을 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고객을 확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면서 자연스레 제품의 퀄러티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에 작년부터는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했다. 김 대표와 같이 의족이나 의수를 가진 장애인들을 위한 '방수커버'다. 샤워나 수영 등의 활동에서 물과의 접촉을 피할 수 있는 제품이다. 마진은 최소한으로 수입해 판매중이다. 같은 병동에서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싶어했던 생각이 나서 수입을 시작했다. 예전 직장이었던 KCC와의 인연도 이어가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야 인생의 고마움과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모금까지 해주면서 수술을 도와줬던 회사가 직접 수입하기에는 소량인 물건들이나 구하기 어려운 제품들을 찾아서 납품하고 있습니다. 매니아층만 대상이기 때문에 시장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우려가 많았어요. 하지만 5년이나 사업을 끌어왔고 즐길 줄 아는 분들이 저희 회사를 찾는 덕분에 저에게도 즐거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유현상과 윤도현에게 고마움을 따로 전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찾아가서 옷을 보여드렸지만 이제는 직접 찾으십니다. 협찬이라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저희 옷을 좋아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락을 사랑하는 열정과 마음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김 대표는 의족 때문에 자연스럽게 걷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인터뷰 내내 기분 좋은 미소로 답하면서 필요한 자료나 사진을 가져다 주는 등 1층과 2층을 분주히 오르내렸다. 느린 걸음으로라도 사업을 확장하려는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사업은 음악, 이종격투기, 바이크, 등산 등 취미와 패션이 결합된 쪽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시장이나 수요가 확 늘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오는 10일에는 대구에서 열리는 <대구패션페어 컬렉션>에도 참석해서 브랜드 알리기에도 나서려고 합니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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