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부진에 빠졌다. 경기 침체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 업계 파업과 태풍 피해까지 겹친 탓이다. 전문가들은 “파업 등 1회성 요인을 감안해도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경기가 가라앉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투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어 향후 경기회복기의 상승 탄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운송장비투자 33%나 줄어

지난달 경기 지표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설비투자 감소다. 전월 대비 13.9%, 전년 동월 대비 14.3%나 급감했다. 전월 대비로는 2003년 1월(-15.2%), 전년 동월 대비로는 2009년 8월(-15.5%) 이후 가장 나빴다. 분야별로는 운송장비 투자가 전월 대비 33.2%, 기계류가 10.0% 떨어졌다. 기계 수주도 8.7% 감소했다. 수출 부진에 불확실한 경기 전망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가동률은 73.8%로 2009년 5월(73.6%) 이후 가장 낮았다. 재고(4.7%)가 늘고 출하(-3.1%)는 감소했다. 물건이 안 팔리면서 공장 문을 닫거나 설비를 놀리는 기업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산업생산이 증가하려면 수출과 내수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수출은 이미 두 달 연속 마이너스다. 지난 7월 전년 동기 대비 8.8% 줄어든 데 이어 8월에도 6.2%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소매판매(전월대비 -3.0%)까지 감소, 내수마저 동반침체에 빠졌다. 업종별로 보면 백화점(-3.3%), 전문상품소매점(-5.8%), 무점포(-3.1%) 모두 판매가 감소했다. 늘어난 곳은 대형마트(4.1%)뿐이었다.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상품을 찾는 ‘불황형 소비’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L자형 경기 부진 우려

정부도 “세계경제 둔화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소비와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지난달 생산·소비·투자 악화에는 자동차 업계의 파업과 연이은 태풍 피해에 따른 일시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파업으로 인해 지난달 자동차 생산이 11만6000대가량 차질을 빚었고 이것이 광공업생산과 승용차 판매, 운송장비 투자 등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자동차 파업 효과를 빼면 광공업생산은 전월 대비 1%포인트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기 지표 악화를 이 같은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광공업생산, 제조업가동률, 소매판매, 설비투자 등 개별 지표는 물론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향후 경기 흐름을 예고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 등 모든 지표가 일제히 나빠진 것은 경기 부진이 심상치 않은 증거라는 얘기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생각보다 우울한 경기 지표”라며 “당초 8월에는 경기 하락세가 멈출 것으로 봤는데 지표로 미뤄볼 때 당분간 L자형 경기 침체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