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예정에도 없던 긴급 임원 세미나를 소집해 경영진을 질타했다고 한다.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면 고객과 인재가 다 떠나고 말 것” “일하는 방식을 모두 바꿀 것” 등이 구 회장의 강력한 주문이었다는 것이다. 연구·개발과 인재 확보의 중요성도 강조되었다고 한다. ‘시장선도’를 최고가치로 내세운 이른바 ‘뉴 LG웨이’를 천명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룹 최고경영자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질타이다.

구 회장의 이 같은 경고가 위기의식의 발로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지금의 경영환경은 그 어떤 큰 기업도 일 순간에 패퇴의 길로 밀려갈 수 있는 구조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노키아가 스마트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지금 그야말로 급전직하의 길을 걷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세계휴대폰 시장에서 10%대의 점유율을 자랑하던 LG전자도 불과 6개월 늦게 스마트폰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LG로서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양강 구도를 어떻게든 깨뜨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1등을 하거나 판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고백일 수도 있다. LG디스플레이가 3D 시장의 트렌드를 바꾸고, LG화학이 전기자동차 배터리 1위로 올라선 것은 LG의 시장선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구 회장의 질타와 함께 LG의 대변신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구 회장의 질타는 단순히 LG그룹의 내부 경영방식만을 문제삼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가뜩이나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다. 구 회장의 질타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들을 꽉 다잡으라는 주문이다. 재벌에 대한 정치적 공세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 기업의 활로는 스스로 업의 본질에 더욱 매진하는 것밖에는 없다는 절박한 호소일 것이다. 정치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이럴 때일수록 기업은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다짐이 구회장의 질타에 담겨있다고 본다. 이런 자세가 비단 기업에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구 회장의 질타가 온통 정치에 한 눈을 팔고 있는 우리 모두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