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경쟁시키는 MB 인사 방식…4인4색 경제팀, 환율·금리정책 '마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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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史 MB노믹스 (8) 불협화음 '첫 경제팀'
이명박 대통령이 ‘모피아 불신’을 바탕으로 짠 첫 경제팀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전광우 금융위원장, 김중수 경제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등이었다. 이들은 다른 출신만큼이나 각자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며 주요 정책 결정 때마다 부딪쳤다.
가장 심하게 대립한 사람은 강 장관과 곽 수석.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회고다. “강 장관과 곽 수석은 대선 캠프시절부터 이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한 실세들이었다. 그러나 강 장관은 나이가 15살이나 어리고 경륜도 한수 아래인 곽 수석을 무시하다시피 했고, 곽 수석은 강 장관의 정책 노선이 ‘훈구파 같다’며 비판적이었다.”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경제정책협의회)등에서 두 사람은 환율정책과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달리했다.
강 장관이 경상수지 적자 확대를 막기 위해 고환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곽 수석은 고유가 상황에서 고환율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종부세도 강 장관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곽 수석은 폐지를 서둘러선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정책의 이견을 조정해야 할 김 수석은 제 역할을 못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회고. “김 수석은 정권에 ‘지분’이 없다 보니 실세들 간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러던 6월 초 한 신문이 경제팀의 불협화음을 지적하면서 김 수석이 강 장관과 함께 고환율을 지지한다고 보도하자 ‘나는 (강 장관과 달리) 고환율주의자가 아니다’는 보도자료를 청와대 기자실에 돌리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강 장관과 김 수석도 관계가 틀어졌다.”
김 수석은 곽 수석과 호흡이 맞는 것도 아니었다. 곽승준의 회고. “나는 대통령 후보 경선과 본선, 인수위를 거쳐서 청와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김 수석은 정권 출범 때 처음 합류했다. 우린 출발선이 달랐다. 나는 20㎞ 앞에서 뛰고 있는데, 그 분은 이제 신발 끈을 매고 있으니 팀 플레이를 할 수 있었겠나.”
강 장관과 금융위 전 위원장의 관계도 원만치 않았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산업은행 민영화를 둘러싸고 의견 대립을 보였다. 전 위원장은 산은 민영화를 강력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강 장관은 반대했다. 산은 민영화에는 곽 수석이 전 위원장 편을 들면서 강 장관과 전 위원장의 사이가 더 벌어졌다.
‘팀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는 경제팀 진용은 이 대통령의 독특한 인사철학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MB 정부 초기 장관급 인사의 설명. “이 대통령은 한 사람에게 경제정책의 힘이 쏠리는 걸 원치 않았다. 재경부 장관이 맡던 경제부총리 제도를 폐지한 것도 그런 이유다. 각자에게 적절한 권한을 주고, 경쟁시켜 최대의 성과를 내도록 한다는 게 인사원칙이었다. 두세명에게 똑같은 과제를 주고 서로 경쟁시키는 기업 경영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다르다는 걸 간과한 게 아쉬웠다. ”
○이 시리즈는 매주 화·목요일 연재합니다.
가장 심하게 대립한 사람은 강 장관과 곽 수석.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회고다. “강 장관과 곽 수석은 대선 캠프시절부터 이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한 실세들이었다. 그러나 강 장관은 나이가 15살이나 어리고 경륜도 한수 아래인 곽 수석을 무시하다시피 했고, 곽 수석은 강 장관의 정책 노선이 ‘훈구파 같다’며 비판적이었다.”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경제정책협의회)등에서 두 사람은 환율정책과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달리했다.
강 장관이 경상수지 적자 확대를 막기 위해 고환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곽 수석은 고유가 상황에서 고환율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종부세도 강 장관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곽 수석은 폐지를 서둘러선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정책의 이견을 조정해야 할 김 수석은 제 역할을 못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회고. “김 수석은 정권에 ‘지분’이 없다 보니 실세들 간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러던 6월 초 한 신문이 경제팀의 불협화음을 지적하면서 김 수석이 강 장관과 함께 고환율을 지지한다고 보도하자 ‘나는 (강 장관과 달리) 고환율주의자가 아니다’는 보도자료를 청와대 기자실에 돌리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강 장관과 김 수석도 관계가 틀어졌다.”
김 수석은 곽 수석과 호흡이 맞는 것도 아니었다. 곽승준의 회고. “나는 대통령 후보 경선과 본선, 인수위를 거쳐서 청와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김 수석은 정권 출범 때 처음 합류했다. 우린 출발선이 달랐다. 나는 20㎞ 앞에서 뛰고 있는데, 그 분은 이제 신발 끈을 매고 있으니 팀 플레이를 할 수 있었겠나.”
강 장관과 금융위 전 위원장의 관계도 원만치 않았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산업은행 민영화를 둘러싸고 의견 대립을 보였다. 전 위원장은 산은 민영화를 강력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강 장관은 반대했다. 산은 민영화에는 곽 수석이 전 위원장 편을 들면서 강 장관과 전 위원장의 사이가 더 벌어졌다.
‘팀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는 경제팀 진용은 이 대통령의 독특한 인사철학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MB 정부 초기 장관급 인사의 설명. “이 대통령은 한 사람에게 경제정책의 힘이 쏠리는 걸 원치 않았다. 재경부 장관이 맡던 경제부총리 제도를 폐지한 것도 그런 이유다. 각자에게 적절한 권한을 주고, 경쟁시켜 최대의 성과를 내도록 한다는 게 인사원칙이었다. 두세명에게 똑같은 과제를 주고 서로 경쟁시키는 기업 경영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다르다는 걸 간과한 게 아쉬웠다. ”
○이 시리즈는 매주 화·목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