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부(副)대사를 지낸 마크 민튼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이 한국 정부가 보낸 독도 관련 홍보물을 “사무실과 행사장 등에 절대 비치하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해 파장이 일고 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뉴욕에서 한·미 상호간의 이해와 협력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이 1957년 설립해 미국인들이 운영해온 단체다. 하지만 연간 370만달러 예산의 대부분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과 정부(국제교류재단)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뉴욕의 한국 총영사관은 얼마 전 외교통상부가 제작한 독도 관련 홍보 책자를 미국 내 여러 단체에 보내면서 코리아 소사이어티에도 발송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뉴욕에서 한국 관련 문화행사를 많이 열기 때문에 한국에 관심 있는 현지인들에게 독도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기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민튼 회장은 직원들이 사무실 앞에 비치해놓은 책자를 보고 깜짝 놀라 “당장 치우라”고 지시했다. 지난 19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한국 영화제 리셉션에도 절대 책자를 가져가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미국 시민단체이지, 한국 정부의 대변인이 아니다”는 게 이유였다.

이 일이 알려지고 총영사관 측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자 민튼 회장은 “홍보 책자를 비치할 마땅한 장소를 찾고 있다”고 답변했다. 한국 외교관들에게 거짓말까지 한 셈이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수장의 동북아 관련 인식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임 회장인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차관보는 자신의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 집무실에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한 동북아 지도를 임기 내내 걸어놓아 빈축을 샀었다. 주미 일본 대사로부터 받은 금장 지도였다. 뉴욕 총영사관 관계자들이 “지도를 내려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내 사무실”이라며 일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관계 증진’이라는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퇴직한 미국 외교관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회장직이 한국에 대한 애정이나 진정성 없이 한국 기업과 정부가 주는 돈으로 품위 유지나 하는 자리로 전락한 건 아닌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유창재 뉴욕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