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된 90년대식 주점 '밤과 음악사이'
사람들은 ‘1990년대 신복고 열풍’의 출발점으로 올해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을 꼽는다. 하지만 원조는 따로 있다. 주인공은 1990년대 나이트클럽 등에서 활약한 DJ와 댄스가수들이다. 이들은 10여년 전부터 홍익대 인근에 클럽을 세우며 ‘홍대 클럽문화’를 주도했다. 첫 클럽은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가 1999년 12월에 낸 힙합 댄스클럽 ‘NB’다. 2001년에는 유명 DJ인 DJ엉클이 만든 테크노클럽 ‘MI’가 가세했다. 같은 해 힙합 클럽 ‘SSAB’도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홍대클럽은 힙합·테크노클럽이 주류였다. 1990년대 대중음악을 아우르는 신복고의 출발점은 2006년 문을 연 ‘밤과 음악사이’였다. 밤과 음악사이의 ‘주인장’인 김진호 사장 역시 1990년대 이름을 날렸던 DJ 출신이다. 당시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중국집 배달원을 연상케 한다”며 ‘짜장’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 사장은 “2004년 ‘스튜디오80’이란 7080클럽을 세웠지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2년 뒤 밤과 음악사이를 만들며 1990년대 음악을 틀었더니 30대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밤과 음악사이는 승승장구했다. 홍대점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서울 강남의 유명 클럽인 ‘할렘’ 등 전국 18개 클럽을 차례차례 인수했다. 자산을 인수하기보다는 각 클럽의 지분을 50~60%씩 사들이는 전략을 썼다. 덕분에 매장 수는 6년 만에 19개로 불어났다. 연매출은 200억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밤과 음악사이의 성장에는 김 사장과 친분이 있는 1990년대 인기 가수들이 한몫했다. 클론의 강원래 씨는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화곡점 등 3개 점포에 각각 10% 안팎의 지분을 투자했다. 클론의 다른 멤버 구준엽 씨는 밤과 음악사이 간판에 쓰인 ‘가요 리믹스’란 글자를 디자인해줬다. 김 사장은 “밤과 음악사이가 잘된다는 소문이 돌자 몇몇 기업과 거액 자산가들로부터 ‘투자하고 싶다’는 제의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밤과 음악사이는 ‘역대 케이블TV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로 등극한 ‘응답하라 1997’을 낳았다. 이 드라마를 제작한 신원호 PD가 이 클럽에 들렀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밤과 음악사이가 히트를 치면서 비슷한 스타일의 업소가 홍대는 물론 서울 강남 등지에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터보 멤버였던 김정남 씨가 홍대 인근에 ‘아이러브케이팝’을 열었다. 인테리어는 현대식이지만, 음악은 1990년대 가요가 중심이다.

김태호/정소람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