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개 팔린 '건담 프라모델'…중년男 '추억' 을 조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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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Practice - 완구업계'글로벌 빅3'반다이
소비자의 감성을 파고드는 제품…마징가Z·다마고치·뽁뽁이 대박
애니·캐릭터·음반 함께 출시…'미디어믹스 전략'으로 수익 극대화
'본 적 없는' '잘 팔릴 것 같은' 기획부터 창의·상품성에 초점
소비자의 감성을 파고드는 제품…마징가Z·다마고치·뽁뽁이 대박
애니·캐릭터·음반 함께 출시…'미디어믹스 전략'으로 수익 극대화
'본 적 없는' '잘 팔릴 것 같은' 기획부터 창의·상품성에 초점
1997년 12월 일본 도쿄의 한 완구점 앞. 이른 시간부터 진풍경이 벌어졌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0~40대 ‘아저씨’ 수백명이 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줄을 선 이들이 기다린 것은 완구회사 반다이가 이날 출시한 ‘초합금혼’ 시리즈의 첫 제품 ‘마징가Z’였다. 중년의 남성들을 겨냥해 내건 ‘소년의 마음을 가진 어른을 위해’란 캐치프레이즈는 아저씨들을 매료시켰다.
반다이는 1950년 설립됐다. 회사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대표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인 건담시리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정도다. 다마고치, 디지몬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제품이 수두룩하다. 지난해 반다이의 매출은 1345억8100만엔(약 1조9272억원)으로 완구업계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창업자 다카스 다케오가 처음 회사를 세운 1950년대 반다이는 낚시찌, 고무부품 등을 만드는 잡화상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플라스틱, 고무 재질의 모형 제작에 뛰어들었다.
중소기업이었던 반다이가 일본 최대 완구회사로 도약한 것은 1979년 43부작 TV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이 방영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인 선라이즈는 시너지 효과를 위해 유명 완구회사인 크로바에 건담 프라모델 제작을 의뢰했다. 하지만 만화 캐릭터의 모습과 다소 다른 제품이 나오자 선라이즈는 계약을 취소하고 반다이에 제품 제작을 맡겼다. 반다이는 시장 조사를 통해 수요층을 파악할 정도로 준비가 철저했다. 로봇이 총과 칼을 무기로 쓰고, 전쟁의 비극을 실감나게 묘사한 건담 애니메이션의 현실적 설정에서 제품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반다이는 1980년 실제 로봇을 144분의 1로 축소한 첫 건담 프라모델을 내놨다. 이 제품은 6개월 만에 100만개가 팔렸다. 선라이즈가 잇따라 건담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반다이도 상승세를 탔다. 지금까지 건담 프라모델은 약 5억개가 판매된 반다이의 베스트셀러다. 만화와 비슷한 모습은 물론 각 부위가 실제 만화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등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평가를 얻었다.
반다이 제품의 특징은 누구나 꿈은 꾸지만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제품을 실제로 만들어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1997년 이후 61번째 모델까지 출시된 초합금혼 제품은 로봇만화에서 나오는 분리, 합체는 물론 변신 장면을 동일하게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중년남성들의 어릴 적 꿈을 자극한 것이다. 반다이는 각종 모형제품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자위대의 기기를 연구하는 등 기술 혁신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07년 나온 ‘무한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제품인 ‘무한뽁뽁이’는 소포 등을 보낼 때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넣는 포장재의 일종인 에어캡(뽁뽁이)을 터뜨리는 감촉을 계속 느낄 수 있도록 제작했다. 500만개의 판매고를 올렸다.
○“마음을 파고든다”
반다이 제품의 연이은 히트 비결은 제품의 정밀도가 높다는 것 외에도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데 있다. 소비자들이 바라는 점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상품화하는 것이다. 주머니 속에 넣을 수 있는 소형 단말기에서 디지털 애완동물을 키우는 다마고치가 대표적이다. 다마고치는 1990년대 들어 중국, 동남아의 값싼 완구와 미국, 유럽의 고품질 완구에 밀려 입지가 좁아진 반다이가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 기획한 제품이었다. 한국에서도 초등학생의 약 20%가 갖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반다이는 여성들을 다마고치의 주요 소비층으로 삼았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디지털세대 여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귀여운 디자인과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컨셉트를 적용했다. 디지털 애완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배설물을 치워주는 것이 핵심 기능인 다마고치는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는 삭막한 도시 사람들의 수요를 폭발시켰다. 세계적으로 7500만여개가 팔려나갔다. 미국 뉴욕에서는 출시 3일 만에 3만여개가 판매됐다.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가 손자에게 주려고 다마고치를 파는 완구점 앞에서 줄을 섰지만 두 번이나 허탕을 쳤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사회적 현상도 제품 개발에 활용한다. 반다이는 독거노인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자 1999년 적외선 통신을 이용해 인형들끼리 대화하고 사람이 인형을 만지거나 말을 걸면 대답하고 인사도 하는 ‘프리모 푸엘’을 출시했다. 말을 배우는 어린이들도 사용할 수 있지만, 독거노인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는 등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면서 100만개가 넘게 팔렸다. 이 밖에 어릴 적 종이인형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여성들을 겨냥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갖가지 옷을 입힐 수 있는 장난감인 ‘페라모델’을 개발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꿈’을 팔지만 지극히 현실적 경영
반다이는 소비자들이 상상하는 것을 현실로 보여주지만 경영전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하나의 캐릭터를 개발하면 캐릭터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수익을 추구하는 게 핵심 전략이다. 애니메이션이 히트하면 캐릭터 모형을 비롯해 옷, 신발 등을 동시에 출시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
또 거물급 가수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르도록 해 주제가 음반 판매량을 높이고, 인기 있는 캐릭터가 나오는 컴퓨터 게임을 내놓는 등 ‘미디어믹스’ 전략을 최초로 실행했다.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1994년 애니메이션 회사 선라이즈를 합병하고 2005년에는 게임업체인 남코도 인수했다.
한정된 수량만을 출시해 품귀현상을 만드는 것도 주된 영업 방침이다. 언뜻 동일한 제품처럼 보이지만 색상이나 부속의 일부를 다르게 만들고 ‘한정판’이라는 이름을 붙여 극소량만 원래 제품보다 몇 배 비싼 가격에 파는 전략이다. 이는 마니아층의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또 캐릭터 관련 각종 이벤트와 영상물을 시리즈 형태로 발표해 고정 소비자가 반복 구매하게 만드는 것도 반다이의 주요 영업방침이다.
반다이는 제품 기획 단계부터 ‘팔릴 것인가, 안 팔릴 것인가’에 모든 판단기준을 맞춘다.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해야 하는 만큼 감각적인 직관을 중시하는 것도 특징이다. 기획한 제품의 상품성을 판단할 때도 ‘이런 건 본 적이 없어’ ‘잘 팔리겠는데’ 등의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
반다이는 1950년 설립됐다. 회사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대표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인 건담시리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정도다. 다마고치, 디지몬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제품이 수두룩하다. 지난해 반다이의 매출은 1345억8100만엔(약 1조9272억원)으로 완구업계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창업자 다카스 다케오가 처음 회사를 세운 1950년대 반다이는 낚시찌, 고무부품 등을 만드는 잡화상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플라스틱, 고무 재질의 모형 제작에 뛰어들었다.
중소기업이었던 반다이가 일본 최대 완구회사로 도약한 것은 1979년 43부작 TV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이 방영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인 선라이즈는 시너지 효과를 위해 유명 완구회사인 크로바에 건담 프라모델 제작을 의뢰했다. 하지만 만화 캐릭터의 모습과 다소 다른 제품이 나오자 선라이즈는 계약을 취소하고 반다이에 제품 제작을 맡겼다. 반다이는 시장 조사를 통해 수요층을 파악할 정도로 준비가 철저했다. 로봇이 총과 칼을 무기로 쓰고, 전쟁의 비극을 실감나게 묘사한 건담 애니메이션의 현실적 설정에서 제품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반다이는 1980년 실제 로봇을 144분의 1로 축소한 첫 건담 프라모델을 내놨다. 이 제품은 6개월 만에 100만개가 팔렸다. 선라이즈가 잇따라 건담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반다이도 상승세를 탔다. 지금까지 건담 프라모델은 약 5억개가 판매된 반다이의 베스트셀러다. 만화와 비슷한 모습은 물론 각 부위가 실제 만화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등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평가를 얻었다.
반다이 제품의 특징은 누구나 꿈은 꾸지만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제품을 실제로 만들어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1997년 이후 61번째 모델까지 출시된 초합금혼 제품은 로봇만화에서 나오는 분리, 합체는 물론 변신 장면을 동일하게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중년남성들의 어릴 적 꿈을 자극한 것이다. 반다이는 각종 모형제품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자위대의 기기를 연구하는 등 기술 혁신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07년 나온 ‘무한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제품인 ‘무한뽁뽁이’는 소포 등을 보낼 때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넣는 포장재의 일종인 에어캡(뽁뽁이)을 터뜨리는 감촉을 계속 느낄 수 있도록 제작했다. 500만개의 판매고를 올렸다.
○“마음을 파고든다”
반다이 제품의 연이은 히트 비결은 제품의 정밀도가 높다는 것 외에도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데 있다. 소비자들이 바라는 점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상품화하는 것이다. 주머니 속에 넣을 수 있는 소형 단말기에서 디지털 애완동물을 키우는 다마고치가 대표적이다. 다마고치는 1990년대 들어 중국, 동남아의 값싼 완구와 미국, 유럽의 고품질 완구에 밀려 입지가 좁아진 반다이가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 기획한 제품이었다. 한국에서도 초등학생의 약 20%가 갖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반다이는 여성들을 다마고치의 주요 소비층으로 삼았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디지털세대 여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귀여운 디자인과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컨셉트를 적용했다. 디지털 애완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배설물을 치워주는 것이 핵심 기능인 다마고치는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는 삭막한 도시 사람들의 수요를 폭발시켰다. 세계적으로 7500만여개가 팔려나갔다. 미국 뉴욕에서는 출시 3일 만에 3만여개가 판매됐다.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가 손자에게 주려고 다마고치를 파는 완구점 앞에서 줄을 섰지만 두 번이나 허탕을 쳤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사회적 현상도 제품 개발에 활용한다. 반다이는 독거노인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자 1999년 적외선 통신을 이용해 인형들끼리 대화하고 사람이 인형을 만지거나 말을 걸면 대답하고 인사도 하는 ‘프리모 푸엘’을 출시했다. 말을 배우는 어린이들도 사용할 수 있지만, 독거노인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는 등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면서 100만개가 넘게 팔렸다. 이 밖에 어릴 적 종이인형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여성들을 겨냥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갖가지 옷을 입힐 수 있는 장난감인 ‘페라모델’을 개발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꿈’을 팔지만 지극히 현실적 경영
반다이는 소비자들이 상상하는 것을 현실로 보여주지만 경영전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하나의 캐릭터를 개발하면 캐릭터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수익을 추구하는 게 핵심 전략이다. 애니메이션이 히트하면 캐릭터 모형을 비롯해 옷, 신발 등을 동시에 출시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
또 거물급 가수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르도록 해 주제가 음반 판매량을 높이고, 인기 있는 캐릭터가 나오는 컴퓨터 게임을 내놓는 등 ‘미디어믹스’ 전략을 최초로 실행했다.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1994년 애니메이션 회사 선라이즈를 합병하고 2005년에는 게임업체인 남코도 인수했다.
한정된 수량만을 출시해 품귀현상을 만드는 것도 주된 영업 방침이다. 언뜻 동일한 제품처럼 보이지만 색상이나 부속의 일부를 다르게 만들고 ‘한정판’이라는 이름을 붙여 극소량만 원래 제품보다 몇 배 비싼 가격에 파는 전략이다. 이는 마니아층의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또 캐릭터 관련 각종 이벤트와 영상물을 시리즈 형태로 발표해 고정 소비자가 반복 구매하게 만드는 것도 반다이의 주요 영업방침이다.
반다이는 제품 기획 단계부터 ‘팔릴 것인가, 안 팔릴 것인가’에 모든 판단기준을 맞춘다.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해야 하는 만큼 감각적인 직관을 중시하는 것도 특징이다. 기획한 제품의 상품성을 판단할 때도 ‘이런 건 본 적이 없어’ ‘잘 팔리겠는데’ 등의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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