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듀폰이 제기한 특허소송에 삼성전자와 코오롱이 당한 데서 보듯 우리 글로벌 기업들이 부딪치고 있는 특허장벽은 높다. 그렇고 그런 ‘동네사람’들의 미국 배심원단이 애플의 둥근 모서리 디자인을 삼성이 베꼈는지, 듀폰의 아라미드기술을 코오롱이 훔쳤는지, 그 복잡한 사실관계의 논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처음부터 편협한 애국감정을 넘어설 수 없었다.

보호주의와 특허를 앞세워 위협적인 한국 기업들을 주저앉히려는 견제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또 다른 위기다. 세계시장에서 성공하는 우리 기업들이 많아질수록 더 세고 거친 태클을 피할 수 없는데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한국 산업이 지금까지 성공한 따라잡기 전략의 본질적 한계, 후발주자의 숙명적 약점이다. 우리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서 다른 누가 이미 열어놓은 길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곳을 향해 전 속력으로 쫓아갔다. 시장에서 ‘표준’이라는 정답을 먼저 찾고 빨리 따라잡은 성과가 지금 삼성전자의 세계 1등이다. 하지만 그 자리를 뺏기는 것 또한 시간문제다.

더 이상 제치고 나갈 대상이 없고, 이제 앞장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 다들 창의적으로 시장을 선도하지 않으면 한국 산업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의 패러다임을 강조한다. 우리의 롤모델이었던 일본이 주요 산업에서 미국을 극복한 이후 혁신적 창조를 이뤄내지 못하면서 쇠락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우리에게 가장 다급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남보다 한발 앞서 혁신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 아무리 잘해야 2등이다. 모방을 벗어나 독창성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더 좋은 것보다 맨 처음 것이 낫다’는 게 마케팅의 선도자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길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창조해야 할지 알 수 없으니 퍼스트 무버론(論)은 추상적이고 관념에 그친다. 무엇보다 우리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효용을 다한 과거의 틀이기만 할까. 정말 퍼스트 무버가 우리 경제의 앞날을 밝히는 등대일까. 혁신의 상징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과연 퍼스트 무버였을까.

남들이 노키아를 열심히 뒤쫓을 때 다른 생각, 다른 길로 나아가 시장의 게임법칙과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일거에 바꾼 잡스의 혁신역량은 물론 위대하다. 하지만 그가 만든 제품도 사실은 이미 나와 있는 기술을 ‘잘 베낀’ 응용과 디자인의 혁신이다. 아이폰의 ‘스마트’ 개념은 이미 오래 전의 개인휴대단말기(PDA)와 다를 게 없고, 아이팟의 퍼스트무버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MP3다. 애플뿐만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혁명의 대명사인 페이스북의 원조(元祖) 또한 우리나라에서 1999년 처음 선보인 싸이월드다.

한국의 퍼스트 무버는 세계시장에서 실패하고 미국은 성공했다. 왜 그럴까. 여러 진단이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그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이 미국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퍼스트 무버가 우리 경제의 나침반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핵심역량은 빠른 추격자로서의 스피드다. 시장의 표준을 창출하고 지배할 수 있는 힘은 아직 없다. 무엇보다 그 힘은 기술·자본·인재·시장·문화 등 총체적인 사회 인프라의 역량에서 나온다. 이근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이 작고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데다 세계 소비시장의 중심인 미국의 문화코드를 맞추기 어려운 비(非)선도국가여서 퍼스트 무버 전략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처음 개척하기도 어렵지만 잘못된 길로 들어설 위험성이 더 크다. 단 한번 발을 헛디디기만 해도 곧바로 추락하는 것이 오늘날의 경쟁환경이고 보면, 힘들게 쌓아온 그동안의 성취마저 날아가는 것은 한순간이다.

삼성전자와 한국 산업, 그리고 한국 경제는 진화(進化)와 퇴보의 기로에 서 있다. 지금까지 이룩한 패스트 팔로어로서의 1등을 넘어서는 성공은 창조적 혁신을 통한 세계시장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서의 역량 입증에 달려 있다는 데 이론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그 혁신의 길, 앞으로 달려 나갈 방향이 선명치 않으니 답답하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