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부실 대학'이지 …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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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다른 용어 혼란 초래… 평가 지표·방식도 감안돼야
국민대, 세종대 같은 대학이 지역의 이름도 생소한 대학보다 못할까. '부실 대학'에 지정되면 최근 언론에 보도된 몇몇 대학처럼 문을 닫게 되는 것인가.
최근 발표된 '정부 재정지원·학자금대출 제한대학' 명단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이다. 하지만 통칭 부실 대학 명단에 포함된 대학들은 '명백한 오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명단을 발표한 교육과학기술부조차 "부실 대학이란 명칭은 잘못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12일 대학들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부실 대학'은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편의상 교과부 평가에서 하위 15%에 포함된 대학들을 '부실 대학'이라 지칭한 것이다.
물론 여기엔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며 "부실 대학을 퇴출시키겠다"고 강조한 영향이 컸다. 때문에 은연중 '재정지원·학자금대출 제한대학 = 부실 대학'이란 등식이 성립됐다. 세간의 인식도 이 같은 방향으로 뒤따랐다.
◆ 정부사업 제재와 퇴출 대상은 다른 것
우선 재정지원 제한대학은 평가지표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대학들로 선정된다. 지표 가운데 학생 충원율(30%)과 취업률(20%)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재정지원 제한대학 중에서도 '절대지표'인 △취업률 50% △재학생 충원율 90% △전임교원 확보율 61% △교육비 환원율 100%에서 2가지 이상 충족시키지 못한 곳은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으로 지정된다.
재정지원 제한대학은 정부의 각종 사업 재정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럴 경우 국책 연구과제 신청과 사업비 지원에 제한을 받는다. 또 개별 학생에게 주어지는 국가장학금I 유형과 별개로, 대학에 배정되는 국가장학금II 유형은 정부 지원금을 못 받게 된다. 다만 이는 2013년 신입생에 한해 적용되며 대학의 교비로 이를 대체할 여지는 있다.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은 제재의 강도가 좀 더 높다. 교과부는 4개 절대지표를 '대학으로서 최소한 달성해야 할 교육 여건·성과 기준'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이를 2개 이상 충족하지 못하면 해당 학교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이 제한된다. 지표 정도에 따라 학자금대출 제한 기준(%)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이들 대학이 곧바로 부실 대학으로 지목돼 퇴출 대상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굳이 비슷한 개념을 꼽자면 교과부가 지정하는 '경영부실대학'이 있다. 컨설팅 등을 통해 학교 경영 개선을 권고하고 일정 유예기간이 지나도 이를 수용, 개선하지 못할 경우 학교 폐쇄 또는 자진 해산을 유도하는 내용이다.
◆ 이름 있는 대학들은 대체 왜 포함됐나
일반적으로 부실 대학이란 학생 충원이 어렵고 재정 상태가 열악해 교육을 지속할 수 없는 대학을 가리킨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지도가 높은 국민대, 세종대, 동국대(경주) 같은 대학들의 명단 포함은 '충격적'이다. 부실 대학이 아닌 '재정지원 제한대학'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각종 지표가 우수한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들이 포함된 데는 지역 안배의 영향이 컸다. 하위 15%인 재정지원 제한대학을 선정할 때 10%는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나머지 5%는 수도권과 지방 대학을 분리해 평가·선정했다.
국민대, 세종대 같은 곳이 인지도와 각종 지표가 낮은 지방대들과 함께 명단에 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 대학은 한 목소리로 "수도권 대학이 대다수 지방대보다 지표가 좋은데 지방 안배 차원 분리 평가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동국대(경주)는 최근 교과부 감사에서 '취업률 허위공시' 사실이 적발돼 추가로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지정됐다. 평가지표가 우수하더라도 대학이 공시한 취업률이 실제 취업률과 3%포인트 이상 차이나면 예외 없이 포함됐다. 동국대(경주) 관계자는 "취업률 공시에서 실수가 있었으나 지표 평가에선 하위 15%가 아닌데 부실대학 낙인이 찍혔다"고 호소했다.
◆ 지표보다 부정·비리 대학 퇴출에 초점
일반인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는 만큼 주무 부서인 교과부와 대학구조개혁위원회도 가급적 용어를 정확히 써 달라고 당부했다. 교과부 대학지원과 이은선 사무관은 "정부 차원에서도 재정지원·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이라 표현하지, 부실 대학으로 칭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사무관은 "대학이 안이하게 경영하면 교육지표가 일시적으로 나빠질 수 있는데 학교가 노력하고 재단이 투자하면 지표는 1년 만에도 개선 가능한 것" 이라며 "부실 대학 명칭은 대학의 자구 노력을 유도하는 교과부 취지와도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첫 발표된 재정지원 제한대학 43곳 가운데 절반 이상이 1년 만에 탈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학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건 후 문을 닫은 대학 5곳(명신대 성화대학 벽성대학 건동대 선교청대) 역시 평가지표가 아닌 중대 부정·비리로 철퇴를 맞거나 자진 폐쇄를 신청했다.
이와 관련, 현 정권에서 교과부 제2차관을 지낸 김중현 연세대 교수(화공생명공학과)는 "지표로 커트라인을 매겨 여러 대학을 퇴출시키긴 어렵다" 며 "큰 부정이나 비리가 적발된 몇몇 대학 퇴출로 '대학도 문 닫을 수 있다'는 경고 차원이 되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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