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연장 승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1949년 미 PGA투어 모터시티오픈에서 캐리 미들코프와 로이드 맨그램은 연장 11번홀까지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 둘은 페어웨이에 주저 앉을 만큼 녹초가 된 상태였다. 주변이 어둠에 묻혀 볼조차 보이지 않게 되자 주최 측은 공동 우승으로 결정했다. 프로골프 최장 연장 기록이다. 국내에서도 1997년 동일레나운클래식에서 11개홀 연장혈투가 벌어졌다. 서아람이 당시 프로 초년생 강수연과 접전을 펼쳤다. 중계하던 방송사의 테이프까지 동이 났다. 결국 강수연이 3퍼트 보기를 하면서 서아람이 우승했다.
골프 연장전은 대회마다 규정이 다르지만 정규라운드보다 심리적 압박감이 큰게 보통이다. 관중들은 흥미진진한 반면 선수들에겐 피를 말리는 접전이다. 극도의 긴장감 탓에 판단력이 흐려지기도 한다. 1962년 US오픈에서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가 18홀스트로크 방식으로 연장전을 치를 때다. 한 홀 남기고 파머가 3타 뒤진 상황에서 니클라우스가 퍼트한 볼이 홀 바로 앞에 멈췄다. 지켜보던 파머가 볼을 집어 니클라우스에게 건네며 “축하하네, 잭” 하곤 악수를 청했다. 파머가 매치플레이로 착각해 경기가 끝난 것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연장전은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가 추아시리폰과 벌인 경기다. 연장 마지막홀에서 티샷을 한 박세리의 공이 연못가 비탈에 걸렸다. 박세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연못으로 들어갔다. 까맣게 탄 종아리와 하얀 발의 대비가 강렬했다. 볼은 정확하게 날아갔고 박세리는 추가 연장전에서 마침내 승리를 따냈다. 미국의 한 골프잡지는 숨막히는 연장전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박세리에게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붙였다.
신지애가 미국 LPGA투어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1박2일에 걸쳐 연장 9홀 만에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4라운드에서 미국의 폴라 크리머와 동타를 이뤄 8차전까지 가는 연장전을 치렀으나 모두 파로 비겼다. 다음날 아침 경기를 재개하자는 주최 측 제안에 크리머가 “오늘 끝내고 싶다”고 주장했고 신지애도 “못할 게 없다”며 맞섰지만 볼이 보이지 않는 바람에 승부를 늦췄다. 결국 10일 오전 벌어진 연장 9번째홀에서 신지애가 파를 잡아내 보기에 그친 크리머를 누르고 기나긴 ‘킹스밀의 혈투’를 마쳤다.
연장전에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신력이 승부를 결정짓게 마련이다. 신지애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이를 모두 극복하고 우승컵을 안았다. 1년 10개월여의 슬럼프도 말끔히 씻어냈다. 신지애는 쉴 틈도 없이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갔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골프 연장전은 대회마다 규정이 다르지만 정규라운드보다 심리적 압박감이 큰게 보통이다. 관중들은 흥미진진한 반면 선수들에겐 피를 말리는 접전이다. 극도의 긴장감 탓에 판단력이 흐려지기도 한다. 1962년 US오픈에서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가 18홀스트로크 방식으로 연장전을 치를 때다. 한 홀 남기고 파머가 3타 뒤진 상황에서 니클라우스가 퍼트한 볼이 홀 바로 앞에 멈췄다. 지켜보던 파머가 볼을 집어 니클라우스에게 건네며 “축하하네, 잭” 하곤 악수를 청했다. 파머가 매치플레이로 착각해 경기가 끝난 것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연장전은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가 추아시리폰과 벌인 경기다. 연장 마지막홀에서 티샷을 한 박세리의 공이 연못가 비탈에 걸렸다. 박세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연못으로 들어갔다. 까맣게 탄 종아리와 하얀 발의 대비가 강렬했다. 볼은 정확하게 날아갔고 박세리는 추가 연장전에서 마침내 승리를 따냈다. 미국의 한 골프잡지는 숨막히는 연장전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박세리에게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붙였다.
신지애가 미국 LPGA투어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1박2일에 걸쳐 연장 9홀 만에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4라운드에서 미국의 폴라 크리머와 동타를 이뤄 8차전까지 가는 연장전을 치렀으나 모두 파로 비겼다. 다음날 아침 경기를 재개하자는 주최 측 제안에 크리머가 “오늘 끝내고 싶다”고 주장했고 신지애도 “못할 게 없다”며 맞섰지만 볼이 보이지 않는 바람에 승부를 늦췄다. 결국 10일 오전 벌어진 연장 9번째홀에서 신지애가 파를 잡아내 보기에 그친 크리머를 누르고 기나긴 ‘킹스밀의 혈투’를 마쳤다.
연장전에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신력이 승부를 결정짓게 마련이다. 신지애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이를 모두 극복하고 우승컵을 안았다. 1년 10개월여의 슬럼프도 말끔히 씻어냈다. 신지애는 쉴 틈도 없이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갔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