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오페라는 마라톤에 비견된다. 공연 시간이 긴 데다 연기와 노래를 소화할 성악가가 많지 않다는 뜻에서다. 특히 무대에 어울리는 소프라노를 찾기가 쉽지 않다. 타고난 울림통과 체력에, 작품 해석력까지 갖춘 소프라노가 드물다. 국내에서 바그너 오페라 전막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지난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콘서트 버전(연극적인 요소를 생략하고 오케스트라를 무대 전면에 내세운 공연)을 공연한 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42)는 그래서 큰 관심을 끌었다. 내년 1월 바그너 오페라 ‘발퀴레’의 브륀힐데 역으로 빈 폴크스오퍼, 슈투트가르트 스타츠오퍼 무대에 설 필스마이어에게서 오페라 얘기를 들었다.

그는 오페라를 등산에 비유했다. “함부르크에 살면서 남편과 산책을 즐기는데, 같은 산에 매일 오르더라도 보이는 풍경과 느낌이 다 다르듯이 같은 역할을 아무리 반복해도 무대에 설 때마다 다르다”고 했다.

유럽에서 몸값이 가장 높은 ‘드라마틱 소프라노’ 중 한 명인 그는 바그너 오페라 전문 가수 중에서 최고로 꼽혔던 소프라노 아스트리드 바르나이에게서 배웠다. 드라마틱 소프라노는 저음에서 더 정확하고 풍성한 소리를 내는 게 특징이다.

“바르나이 선생님은 노래하는 기교나 기법에 대해 강조한 적이 거의 없어요. 대신 바그너라는 작곡가, 그 시대의 배경과 역사, 재미있는 뒷이야기 등에 대해 수없이 얘기했죠.”

보통 마흔이 넘어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전환하는 것과 달리 그는 30대인 2001년부터 솔로로 활동했다. ‘발퀴레’에서 지글린데와 브륀힐데 역,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졸데와 브랑게네 역, ‘신들의 황혼’에서 제 2, 3의 노른 역, ‘살로메’에서 헤로디아스 역 등 수많은 바그너 작품에서 주요 역할을 맡아왔다. 2000년부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러브콜을 받았고, 틸레만, 주빈 메타, 로린 마젤 등 거장 지휘자와 유럽의 주요 극장에서 연주했다.

그는 좋은 성악가를 만드는 조건으로 시간과 경험, 체력을 꼽았다. 20대에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자만하지 말고, 목소리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는 것. 그는 바그너 오페라 전막 공연으로 한국을 다시 찾고 싶다고 했다.

“젊은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콘서트가 아니라 제대로 된 오페라 무대에서 다시 만나고 싶어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