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국가들이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텃밭이나 다름없던 중국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동 오일파워의 역습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국내 유화업체들은 중국과 FTA 수준의 경제협정을 체결한 대만에 이은 중동의 저가 물량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양상이다.

중동의 부상은 이미 예상됐던 바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장기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석유화학산업 육성에 나선 이후 카타르 이란 쿠웨이트 등도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중동 석유화학제품의 경쟁력은 자국이 보유한 저가 에탄에서 나온다. 한국 기업들보다 PE(폴리에틸렌) 기준으로 30%가량 싸게 생산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벌써 중국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시장에서는 올 들어 7월 말까지 한국 업체 점유율은 16%로 추락한 반면, 중동 점유율은 55%로 치솟았다. 중동은 PP(폴리프로필렌) 시장에서도 지난해 한국을 제쳤다. 시장 판도가 일거에 뒤집히다보니 자원확보를 노린 중국과 중동이 모종의 딜을 한 게 아니냐는 루머까지 나도는 형편이다. 중동은 중국을 넘어 세계시장으로 위세를 뻗치고 있다. 업계는 2007년 기준 전 세계 PE와 PP 생산에서 각각 13%, 7%에 달했던 중동 비중이 2015년에는 20%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러다 세계 석유화학산업 주도권을 중동에 내주는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여기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미국 천연가스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셰일가스는 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 가스가격은 불과 5년 만에 4분의 1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셰일가스는 석유화학제품의 핵심원료인 에틸렌을 만들어낸다.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석유화학산업 강자로 부활한다면 경쟁구도는 또 다시 크게 출렁거릴 게 분명하다. 벌써 2017년까지 미국의 에틸렌 생산 능력이 25%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석유화학산업만 그런 것도 아니다. 천연가스를 통해 직접환원철(DRI)을 생산하는 제철이나 자동차 등 수송부문도 그 영향권이다.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물론 다른 제조업체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