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기차는 8시에 떠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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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탈출하는 실업자 줄잇고 프랑스 탈출하는 부자들도 많아
누구나 조국서 살고자 하지만…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
누구나 조국서 살고자 하지만…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
그리스인 틸레마티오스 카라칼리오스는 40세다. 군 제대 후 아테네에서 17년간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경제위기로 직업을 잃었고 스웨덴으로 이주해 학교 화장실을 청소한다. 지금 그는 양복 아닌 헐렁한 블루진을 입고 있다. 지난 주말 블룸버그에서 보도한 ‘그리스인 조르바’들의 이야기다. 나라가 망하면 국민들은 흩어진다. 소위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다. ‘산하(山河)는 제자리에 있다’는 이 말은 실은 사람이 모두 떠나버렸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그렇게 그리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3류 대중민주주의와 좌파들이 복지국가라고 우기는 포퓰리즘은 그렇게 파열음을 내면서 부서졌다. 국가건 개인이건 흥청망청한 결과는 다를 수가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스웨덴 거주 허가를 받은 그리스인은 1093명이다. 2010년의 두 배다. 올해는 2000, 3000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리스가 아니라 스웨덴 이민당국의 손에 달려 있다. 대기 순번은 이미 충분히 늘어서 있다. 숫자로 따지면 다섯 배나 많은 그리스인들이 독일 뒷골목을 채운 다음이다.
‘지식인은 북유럽으로, 기술자는 아부다비로’라는 공식까지 나올 정도다. 그리스는 올해도 6.9%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작년과 비슷한 가혹한 삭감이다. GDP 규모는 고점 대비 벌써 30%에 가까운 위축이다. 일자리를 찾고 있는 122만 조르바들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우선 빌어본다. 그러나 기도는 기도, 현실은 현실이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무한정 국채 매입도 실은 남의 이야기다. 아니 여기에는 약간의 속임수가 있다. 생산성의 획기적 상승 없는 그 어떤 개혁도 실은 공염불이다. 말이 좋아 생산성이지 본질은 가혹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이다. 이 조건이 충족돼야 국채매입도 가능하다. 엎어치나 메치나 고난의 행군이다.
한국인들이 살아보자는 일념 하나로 세계로 흩어져 나갔던 일들도 기억해둘 만하다. 틸레마티오스는 지금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지만 한국의 수많은 대졸자들은 독일 광산 지하 1000m에서 석탄을 캤고 여성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백인 남성의 시체를 씻었던 거다. 베트남 정글에서 길을 닦고 중동의 뙤약볕에서는 또 집을 지었다. 그러니 그리스인들이여! 지금의 처지를 과도하게 비관하지는 마시라…. 그렇게 한국인은 몇 번에 걸쳐 물결처럼 세계로 나아갔다.
프랑스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정반대다. 주인공은 베르나르 아르노다. 루이비통 그룹(LVMH)의 회장이다. 유달리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방 브랜드의 주인이다. 그가 지난주 벨기에 귀화를 신청했다. 세계 4위요 프랑스에서는 최고 부자다. 재산이 46조원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무려 75%로 올리려는 올랑드 정부에 맞서는 베르나르의 유일한 저항 수단은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부자증세 기준선인 100만유로는 우리 돈으로 14억원이다. 소득 수준 차이를 감안하면 한국서는 5억원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그 이상의 소득은 4분의 3을 국가에서 약탈해간다. 틸레마티오스 만큼이나 베르나르 아르노는 프랑스를 떠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누구에게나 조국이 있다. 조국이 그를 내치거나 스스로 떠나거나 둘 중 하나다. 알고 보면 틸레마티오스가 일하는 스웨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테니스 스타 비외른 보리가 떠났고 유명 가수그룹 아바도 조국을 버렸다. 중소기업의 탈출도 이어졌다. 급기야 가구 재벌 이케야 그룹도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겨버렸다. 아무도 이들의 탈출을 비난할 수 없다. 비록 조국이라 하더라도 재산을 강탈하고 땀흘려 번 돈을 세금이라는 이름 아래 제멋대로 빼앗아갈 권리는 없다. 이게 언제나 문제였던 거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 깃발이 선명하게 나부끼는 한국이다. 정당들은 “포퓰리즘의 진수를 보여주겠다”고 경쟁하는 양상이다. 다른 나라의 실패를 보고 배우지 못하면 어리석다고 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자기 파괴 충동과 비슷하다. “기차는 8시에 떠나고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스 여가수 아그네스 발짜는 노래한다. 이 구슬픈 노래를 한국인은 기억해야 마땅하다.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3류 대중민주주의와 좌파들이 복지국가라고 우기는 포퓰리즘은 그렇게 파열음을 내면서 부서졌다. 국가건 개인이건 흥청망청한 결과는 다를 수가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스웨덴 거주 허가를 받은 그리스인은 1093명이다. 2010년의 두 배다. 올해는 2000, 3000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리스가 아니라 스웨덴 이민당국의 손에 달려 있다. 대기 순번은 이미 충분히 늘어서 있다. 숫자로 따지면 다섯 배나 많은 그리스인들이 독일 뒷골목을 채운 다음이다.
‘지식인은 북유럽으로, 기술자는 아부다비로’라는 공식까지 나올 정도다. 그리스는 올해도 6.9%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작년과 비슷한 가혹한 삭감이다. GDP 규모는 고점 대비 벌써 30%에 가까운 위축이다. 일자리를 찾고 있는 122만 조르바들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우선 빌어본다. 그러나 기도는 기도, 현실은 현실이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무한정 국채 매입도 실은 남의 이야기다. 아니 여기에는 약간의 속임수가 있다. 생산성의 획기적 상승 없는 그 어떤 개혁도 실은 공염불이다. 말이 좋아 생산성이지 본질은 가혹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이다. 이 조건이 충족돼야 국채매입도 가능하다. 엎어치나 메치나 고난의 행군이다.
한국인들이 살아보자는 일념 하나로 세계로 흩어져 나갔던 일들도 기억해둘 만하다. 틸레마티오스는 지금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지만 한국의 수많은 대졸자들은 독일 광산 지하 1000m에서 석탄을 캤고 여성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백인 남성의 시체를 씻었던 거다. 베트남 정글에서 길을 닦고 중동의 뙤약볕에서는 또 집을 지었다. 그러니 그리스인들이여! 지금의 처지를 과도하게 비관하지는 마시라…. 그렇게 한국인은 몇 번에 걸쳐 물결처럼 세계로 나아갔다.
프랑스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정반대다. 주인공은 베르나르 아르노다. 루이비통 그룹(LVMH)의 회장이다. 유달리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방 브랜드의 주인이다. 그가 지난주 벨기에 귀화를 신청했다. 세계 4위요 프랑스에서는 최고 부자다. 재산이 46조원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무려 75%로 올리려는 올랑드 정부에 맞서는 베르나르의 유일한 저항 수단은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부자증세 기준선인 100만유로는 우리 돈으로 14억원이다. 소득 수준 차이를 감안하면 한국서는 5억원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그 이상의 소득은 4분의 3을 국가에서 약탈해간다. 틸레마티오스 만큼이나 베르나르 아르노는 프랑스를 떠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누구에게나 조국이 있다. 조국이 그를 내치거나 스스로 떠나거나 둘 중 하나다. 알고 보면 틸레마티오스가 일하는 스웨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테니스 스타 비외른 보리가 떠났고 유명 가수그룹 아바도 조국을 버렸다. 중소기업의 탈출도 이어졌다. 급기야 가구 재벌 이케야 그룹도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겨버렸다. 아무도 이들의 탈출을 비난할 수 없다. 비록 조국이라 하더라도 재산을 강탈하고 땀흘려 번 돈을 세금이라는 이름 아래 제멋대로 빼앗아갈 권리는 없다. 이게 언제나 문제였던 거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 깃발이 선명하게 나부끼는 한국이다. 정당들은 “포퓰리즘의 진수를 보여주겠다”고 경쟁하는 양상이다. 다른 나라의 실패를 보고 배우지 못하면 어리석다고 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자기 파괴 충동과 비슷하다. “기차는 8시에 떠나고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스 여가수 아그네스 발짜는 노래한다. 이 구슬픈 노래를 한국인은 기억해야 마땅하다.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