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러시아 역사 연구소와 공동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서 발해의 유물들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문헌으로만 알려졌던 발해 5경 15부 중의 하나인 솔빈부가 이 지역에 존재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료였다. 솔빈부에는 말 사육장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블라디보스토크 주위에 목장들이 많다. 고구려 유민들이 세웠다는 ‘해동성국 발해’의 유산일까.

하지만 이 지역을 세계 역사에 등장시킨 사람들은 러시아의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16세기 중반 모피나 목재 등 각종 자원을 찾으러 블라디보스토크를 탐험하고 극동 끝자락에 보고(寶庫)가 있음을 서양사회에 알렸다. 이곳의 가치를 안 제정 러시아는 1848년 아편전쟁에 의한 베이징 조약에서 청으로부터 연해주를 할양받았다. 엄청난 횡재였다. 당시 청왕조의 무능과 무책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약이기도 했다.

동방을 뜻하는 보스토크와 지배하다는 뜻의 블라디를 붙여 블라디보스토크라고 명명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만큼 블라디보스토크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빨리 알아차린 제정 러시아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시발점으로 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1916년 완공하고 태평양 해군기지도 설치했다. 주민들에게는 러시아어 교육도 체계적으로 시켰다.

블라디보스토크가 다시 우리 역사에 다가온 때는 일본 점령기다. 일제의 약탈과 기근 등을 피해 연해주에 정착한 한인들이 독립운동을 벌여 나갔다.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은 이준이 이상설과 합류한 곳도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다. 안중근이 항일독립 정신을 고취한 것도 이곳이었다.

요즘 블라디보스토크와 가장 교류가 많은 나라는 한국이다. 정기 국제항공편 10편 중 인천노선이 2편, 부산이 1편이다. 러시아가 개방될 때부터 우리 기업들은 재빨리 진출하기 시작했다. 농업 제조업을 비롯해 다양한 업종이 진출해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러시아 국영기업체와 손잡고 조선소를 건설 중이며 쌍용자동차 모델의 조립 자동차공장도 세워져 있다. 현대중공업은 콩과 옥수수를 생산하는 농장을 운영 중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내일부터 이틀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다.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극동발전전략 2025를 발표하는 등 극동정책에 각별히 관심을 쓰는 러시아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극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중국이나 일본 기업들도 블라디보스토크 진출을 노린다. 갑작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블라디보스토크다. 군사요충지가 경제적 거점으로 바뀌어 가는 느낌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