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서울 나들이를 하는 시골 할아버지가 기차를 타고 상경해 서울역에 내렸다. 커다란 대합실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역을 나서니 온 천지를 사람들이 뒤덮고 있는 것 같았다. 수많은 인파를 보고 깜짝 놀라 마중 나온 아들에게 물어 보았다. “얘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산다니?”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서로 뜯어먹고 삽니다.”

#팀원을 서로 뜯어먹게 하라

우스갯소리지만 인간 생활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서로 뜯어먹으며 산다. 무인도에 사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사회나 조직 속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주고, 필요한 것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실제로 가치를 주지 못하고 무작정 남을 뜯는 것은, 그것이 국가든 기업이든 조폭이든 어떤 명분을 내세우고 어떤 형태를 취하더라도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리더십에 이를 대입해 보면 좋은 팀장이란 팀원들을 서로 뜯어먹게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험한 말 같지만, 실상은 팀원들이 지식과 현실적 경험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역량을 키워 나가는 구조를 만들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은 얼굴 생김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회사 업무뿐 아니라 개인의 취미까지 넓혀 보면 비록 소수의 팀원들일지라도 경험이 다양하고 지식의 폭도 상당히 넓다. 현실적 경험과 지식은 분산돼 있을 경우 아무것도 아니지만, 공유할 수만 있다면 팀원들이 서로 배우고 같이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로마는 어떻게 인재를 양성했나

나이가 젊을수록 힘들더라도 좋은 경험을 쌓을 기회를 갖고 싶어 한다.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이 높은 데다 배울 것이 많은 업무에 참여해 경험을 쌓는 것이 자신의 경력관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팀장이 좋은 경험을 쌓도록 해줄 수 있다면 팀원들에게는 큰 인센티브가 된다.

이를 로마의 인재양성 시스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반도 중부의 조그만 마을에서 시작해 고대 서방세계 최대의 국가를 건설하고 최고의 문화 수준을 이뤘던 천년제국 로마는 인재양성 시스템이 탁월했다. 로마는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전통으로 귀족 명문가 자제는 보통 10년, 최소한 3~4년의 군복무를 반드시 거쳤다.

군복무라고 해서 군복 입고 그저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최전방 정예 로마군단의 10명 대대장 중 수석대대장으로 임명됐다. 명예직이 아니었다. 유사시 군단장을 대신해서 1만명의 병력을 지휘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명문가 출신 20대 초반의 경험 없는 풋내기가 백전노장인 동료 대대장들을 지휘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리더십은 책상머리에 있지 않다

로마인들은 지도자의 리더십은 책상머리 공부가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 부딪쳐 경험하는 과정에서 쌓인다고 본 것이었다. 군대의 지휘관 생활을 통해 리더십이란 이론이 아닌, 사람을 제대로 다루고 실제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임을 깨닫게 했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로마엔 우수한 지도자가 끊임없이 충원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현실과 유리된 그럴 듯한 관념론과 이상론에 빠져든 선동가가 지도자가 되면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2000여년 전 로마인이 고민했던 리더십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화두다. 2000여년의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인들의 탁월한 인재양성 시스템은 ‘리더십이란 책 속의 이론이 아니라 현실 속의 실체’라는 살아 있는 교훈을 주고 있다.

리더십이 강조되면서 관련 서적도 쏟아져 나오고, 리더십을 계발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뿐이지 리더십 자체를 체득하도록 해주지는 않는다. 결혼정보회사가 청춘남녀에게 결혼 계기를 만들어줄 뿐, 결혼시킬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실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라

리더십은 읽거나 들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경험에서 습득하는 것이다. 팀장의 리더십도 팀원들을 대하고 이끄는 실제 과정에서 습득된다. 지식과 경험 또한 공유하라고 명령해서 되는 것이 아닐 뿐더러 교육을 통해서도 한계가 있다. 서로 신뢰를 가진 인간관계가 출발점이고 팀워크가 뒷받침돼야 한다. 상호간에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지식이나 경험을 전수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돈을 나누면 각자의 몫은 줄어들지만 지식과 경험은 나눌수록 늘어난다. 돈은 나누어도 총액은 그대로지만 지식과 경험은 나눌수록 총량도 늘어나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 팀장이 돈을 줄 수는 없지만 경험과 지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면 팀원들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돈이 들지도 않는다. 팀장의 리더십과 팀의 분위기만 조성되면 가능하다. 팀장이 팀원들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키워 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팀의 실적과 팀원들의 사기는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다.

정리=이주영 한경아카데미 연구원 opeia@hankyung.com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kjunkim@hanmail.net>

△서울대 농경제학과, 동 대학원(경제학)
△쌍용투자증권, 쌍용경제연구원, 쌍용정보통신, 딜로이트 투쉬 기업금융, 딜로이트컨설팅 부사장
△저서 《잘되는 회사는 분명 따로 있다》《뛰어난 직원은 분명 따로 있다》 《인정받는 팀장은 분명 따로 있다》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