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평범함에서 구해 위대함으로 이끈다.”

정치인 사무실에 걸려 있는 액자의 문구가 아니다. 청년이 꿈을 되새기며 적은 일기도 아니다. 요가복 등 스포츠 의류를 전문으로 만드는 캐나다 기업 룰루레몬 애슬레티카의 쇼핑백에 적혀 있는 글귀 중 하나다.

옷 만드는 회사가 뭘 세상까지 구하려 할까. 크리스틴 데이 룰루레몬 최고경영자(CEO)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룰루레몬의 요가복을 사는 것은 자신의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룰루레몬을 통해 여성들은 반복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다. 가정, 직장의 ‘일부’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삶을 선물하라’는 데이 CEO의 전략은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8년 룰루레몬의 사령탑을 맡은 그는 4년 만에 캐나다를 넘어 미국 호주 홍콩 등으로 진출하며 매장 수를 71개에서 170여개로 늘렸다. 2007년 기업공개 때 30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지금 60달러가 넘는다. 취임 당시 3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연 매출은 올해 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실시한 ‘세계 독자가 뽑은 올해의 기업인’ 토너먼트 8강전에서 데이 CEO는 구글의 CEO 래리 페이지를 꺾었다. 작년 포천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 순위에서도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을 누르고 13위를 차지했다. 나이키 갭 등 대형 의류 브랜드들이 잇따라 요가 라인을 출시했지만, 룰루레몬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경기 불황이 세계를 덮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룰루레몬은 매년 30% 이상 성장했다. 경기가 어려우면 의류, 특히 가격이 비싼 옷 소비를 먼저 줄이는 게 일반적이다. 일상적으로 입는 옷이 아닌, 운동복 브랜드인 룰루레몬은 이런 통설을 뒤집었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앤드메일은 “소매업계의 역사 가운데 가장 신기한 성공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

데이 CEO는 룰루레몬에 합류하기 전 스타벅스에서 20여년 동안 일했다. 아시아·태평양 부문 대표까지 지냈다. 스타벅스를 ‘커피판매점’에서 ‘아침을 여는 공간’으로 바꾼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커피를 단순한 기호품이 아닌 삶의 일부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는 룰루레몬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스타벅스의 마케팅 전략을 가져와 발전시켰다. 1998년 데니스 칩 윌슨이 창립한 룰루레몬은 ‘여성만을 위한 운동복’ 시장을 개척했다. 하지만 그가 오기 전까진 ‘신선한 컨셉트의 의류 브랜드’ 정도였다.

데이 CEO는 룰루레몬에 삶과 철학을 입혔다. 룰루레몬의 매장 벽에는 요가와는 상관없는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친구는 돈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지구에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하는 것이다” “춤춰라, 노래하라, 여행하라, 매일 치실을 하라” 등.

문구들에 담긴 가치와 룰루레몬 제품을 구매하는 가치가 같다고 고객을 설득하는 전략이다. 그는 “룰루레몬을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트렌드로 만드는 것이 경영 목표”라며 “건강에 투자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를 위한 투자이고, 나아가 세상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룰루레몬의 매장 풍경은 다른 옷 가게와 사뭇 다르다. 옷을 고르고 입어보고 계산하는 공간이 아니다. 글로브앤드메일은 ‘심각하게 수다스러운 공간(seriously chatty place)’으로 묘사했다. 여성들은 룰루레몬 매장에서 요가복의 질감, 색상은 물론 요가 자세, 운동 효과 등에 대해 얘기한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가진 직원들은 고객의 질문에 답해주며 전문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직접 함께 요가를 하기도 한다. 룰루레몬이 주최하는 집단 요가 강의인 ‘샐류테이션 네이션’은 연례 행사로 자리잡았다. 도시의 룰루레몬 매장 근처에 수십~수백명의 여성이 나란히 요가매트를 깔고 동작을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성들은 룰루레몬 매장을 찾고 행사에 참여하면서 스스로를 ‘자신의 삶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건강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컨설팅회사 DIG360의 데이비드 그레이 컨설턴트는 “룰루레몬은 자신을 ‘선(virtue)’으로 정의하고 고객에게 ‘선의 가치’에 투자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얘기한다”며 “덕분에 요가를 하지 않는 사람도 ‘옳은 일’에 동참하기 위해 룰루레몬을 산다”고 분석했다.

◆고객을 불안하게 하는 마케팅

룰루레몬은 매장에서 여는 요가 행사 정도를 빼고는 별다른 홍보활동을 하지 않는다. TV, 신문은 물론 온라인 광고도 없다.

룰루레몬을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건 할리우드의 스타들이다. 항상 파파라치가 대기하고 있는 걸 아는 스타들은 집앞을 나갈 때도 허투루 옷을 입지 않는다. 반면 과하게 꾸미고 나갔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많은 스타들은 룰루레몬을 택했다. 얼핏보면 트레이닝복을 입은 것 같지만,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줘 은근히 눈에 띈다. 이런 옷을 ‘1마일 패션’이라고 한다. 스타들이 커피 한 잔을 들고 동네에 잠깐 나갈 때 입는 옷이라는 뜻이다. 파파라치들이 찍은 사진들은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데이 CEO는 스타들을 통해 쌓은 인지도를 경영전략에 활용했다. 룰루레몬을 ‘편안하지만 특별한 옷’으로 만들기 위해 아무리 잘 팔려도 일정 수량 이상은 만들지 않았다. “요가 센터를 갔을 때 나랑 같은 룰루레몬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전략은 고객들이 룰루레몬을 더욱 찾게 만들었다. 2009년에 나온 티셔츠 ‘그래티튜드 랩’은 나오자마자 전량 매진됐다. 지금은 이베이에서 원가의 두 배가 넘는 25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다시 출시했지만 캐나다의 딱 한 군데 매장에서만 팔았다. 물론 나오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소량만 만드는 대신 소재는 최고급을 쓴다. 수분 흡수는 물론 피부 마찰, 탄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요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인정하는 수준이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선의 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나무 추출물 등 친환경 소재만 쓴다. 최고급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요가복의 샤넬’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이런 전략 덕분에 충성스러운 팬층을 확보했다. 인터넷에는 룰루레몬 직원이 아닌데도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사진을 찍어 올리고 제품 분석을 하는 수많은 블로거가 있다. 대표적인 팬 블로거 중 한 명인 크리스티나 찰머스는 “룰루레몬은 고객이 제품을 사지 못할까봐 불안하게 만든다”며 “고객들도 이런 전략을 잘 알고 있고, 즐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비 넘고 전설로 남을까

업계에서는 룰루레몬을 키워온 데이 CEO의 전략이 추가적인 성장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콧대높은 마케팅’으로 판매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량 생산을 선택하면 브랜드의 가치가 떨어진다. 시장에서는 매출 10억달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키방크캐피털마켓의 에드워드 유르마 투자전략가는 “룰루레몬은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추가 성장엔 한계가 있다”며 “잠재적인 주가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데이 CEO의 생각은 다르다. 2000년대 초 스타벅스에 있을 때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지만 결국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아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그는 자주 인용하는 미국의 자유주의 소설 ‘아틀라스’의 한 문장을 따와 답했다. “누가 나를 멈출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할 수 없다고 말하겠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