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자동차·정유·화학업체 등 잇단 감원

장기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운 산업계에 인력 구조조정의 징후들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수출 활로를 뚫지 못한 채 내수 부진의 직격탄을 맞는 일부 업종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정리해고의 찬바람이 몰아쳤던 90년대말 외환위기 이후 다시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생존을 위한 탈출구를 확보하는 현상들이 이어질지 주목된다.

◇판매부진 자동차 '희망퇴직 접수' = 자동차업계에는 르노삼성이 7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르노삼성이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는 2000년 회사 출범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내수부진에 시달리는 르노삼성은 기업 회생 방안의 하나로 연구개발(R&D)과 디자인 부문을 제외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R&D와 디자인 부문을 제외하면 80%가량인 4천700명 정도가 해당하는 셈이다.

희망퇴직자에게는 퇴직금과 근속 연수에 따라 최대 24개월분의 위로금이 지급된다.

르노삼성의 한 관계자는 "신청자가 몇 명인지 아직 집계는 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신청자에 대한 사내 소문이 무성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앞서 한국지엠도 지난 6~7월 부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130여 명이 지원해 차례로 퇴직 절차를 밟고 있다.

한국지엠의 한 관계자는 "조직을 슬림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글로벌 GM의 방침과 연계해 희망자에 한해 퇴직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업체 주택분야 임직원 '조마조마' = 대형 건설업체들이 '돈이 되지 않는 곳'의 고비용 인력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국내 주택 경기 침체로 주택 사업의 비중을 줄이면 당연히 감원이 따르는 형식이다.

해외 플랜트 등 수익성이 담보되는 몇몇 분야에만 집중함에 따라 실제로 일부 업체의 주택·건축 분야 임직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올해 플랜트 분야 지원자들만 초청해 2차례의 채용 설명회를 열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없지만 주택 현장이 대폭 축소되면서 관련 인력을 다른 분야로 옮겨 자연스럽게 주택 인력이 줄었다고 업체는 전했다.

중견 건설업체들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연합의 '건설사 인력감축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사들이 감원한 인원은 2천600여명에 달한다.

업체별 감축인원은 벽산건설 250명, 풍림산업 350명, 삼부토건 110명, 남광토건 170명, 우림건설 260명, 성원건설 660명, 삼안 400명, LIG건설 210명, 우방 270명 등이다.

통계에서 빠진 비노조원, 비정규직, 일용직노동자 등을 포함하면 실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는 삼환기업은 임원 20명 전원에게서 사직서를 받기도 했다.

최근 매각 실패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쌍용건설도 상황이 정리되면 자구책 마련 차원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정유·화학 "내수 난망" 고비용 인력 정리 = GS칼텍스는 지난 6월 영업본부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70여명의 희망퇴직을 접수했다.

주로 50대 초중반의 팀장급 이하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직영 주유소에 근무하도록 해주고 60세까지 정년도 보장해주기로 했다.

이는 석유혼합 판매제와 알뜰주유소 확산 등으로 내수에서 마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영업분야의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GS칼텍스는 업계 1위인 SK에너지에 비해 영업인력 비중이 큰 편이다.

다른 정유업체들도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 영업 인력의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KCC는 7월 초 직원 40여명을 해고했다.

KCC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이라기보다는 인사고과상 근무태만 등 문제가 있는 직원들을 솎아내는 차원의 인사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건설 경기 위축에 따라 건축자재업계가 겪고 있는 불황도 이번 인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도 업계에서는 나온다.

KCC는 올해 희망퇴직 등을 통한 추가 감원 계획은 아직 없다.

◇유통 "매출 줄어도 인력은…" = 유통업체들은 아직 인력 감축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수립한 곳은 없지만 경기 침체가 더 길어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올해 들어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대형 유통업체들은 당장 인력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장기 불황이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칠지 몰라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는 나쁘지만 점포는 계속 늘기 때문에 인력 부분을 손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마트나 백화점의 하반기 채용 인원도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나 매출 감소를 어떤 방식으로든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부에 긴장감이 흐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통 대기업인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지난 6월 전 계열사에 비상경영체제를 주문하며 "하반기에는 어떤 상황이 우리에게 닥칠지 예상할 수 없는 만큼 방심하지 말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달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中企 "하반기 채용 줄인다" = 국내 중소 제조업체는 경기 불황으로 올해 하반기 채용 규모를 줄일 예정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 제조업체 300개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하반기 인력 고용을 계획한 업체는 53%에 불과해 상반기 68.3%보다 낮았다.

채용 인원 역시 업체당 평균 2.1명이어서 상반기 3.3명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 계획이 없다고 응답한 업체는 그 이유로 경기 전망 불확실 30.5%, 경영 악화 및 사업 축소 10.6%, 높은 인건비 부담 5.4% 등을 꼽았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올해 역대 최다인 중소기업 1천355개(잠정치)를 신용위험 세부평가 대상, 즉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해 금융감독원에 보고했다.

은행들은 채용을 확대하지 않고 자연 감소분을 채우지 않는 등 금융권 자체의 구조조정은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62개 증권사의 임직원은 4만3천586명으로 작년 말(4만4천404명)보다 818명 줄었다.

6개월 동안 800명이 넘는 증권사 직원들이 직장을 떠난 셈이다.

(서울=연합뉴스) hope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