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샘 건물이 철거되고 보증금을 돌려받았을 때 순간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아내와 봉사활동하며 고생한 대가로 나이 70에 이제 성지순례 등 해외여행이라도 하라는 뜻인가. 하지만 ‘이미 어려운 이웃들에게 바친 돈’이라는 생각에 기부를 결심했어요.”

오윤덕 법무법인 송백 대표변호사(70·사법연수원 3기·사진)는 지난해 2월까지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청년들을 위한 쉼터 ‘사랑샘’을 세워 8년 동안 운영했다.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10년이었다. 오 변호사는 낮엔 변호사로, 저녁과 주말엔 강연 상담 산행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그런데 입주한 건물이 재건축되면서 사랑샘은 문을 닫았고, 대신 보증금 3억7000만원이 손에 들어왔다. “사랑샘 시작 당시 ‘건물 소유 관계가 복잡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법무사 말에 그냥 버려둔 돈이었어요.”

40년 판사, 변호사 생활을 한 그에게도 큰 돈이었다. 오 변호사는 보증금에 이주비를 합친 5억원을 조성, 용처를 찾다가 신영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의 제안을 받고 대한변협에 내놓았다. 대한변협은 기부금으로 사랑샘재단을 세워 사회적 약자 및 청년들을 돕는 활동을 펼치기로 했으며, 지난 22일 기부금 수여식을 하는 등 본격적 활동에 들어갔다.

망설이다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는 오 변호사는 지난 24일 기자와 만나 “사회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은 실은 사회에 빚을 진 셈”이라며 “물이 고이면 썩듯이 빚도 갚지 않으면 고통을 겪게 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돈을 뜻있게 쓰면 그 이상 가져다줄 수 있는 행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법조인들이 초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 공부할 때만 해도 ‘정의롭게 그리고 불우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공감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으나 합격 후에는 현실 핑계를 대면서 귀한 청운의 생각을 잊어버린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늦게나마 내가 차지한 법조인의 자리는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얻어졌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사회에 진 빚을 봉사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기부 문화도 아직 우리 사회에 정착되지 않았지만 기부를 받아 관리하는 문화도 역시 미흡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부하는 사람은 자식, 손자에게 남겨줄 수도 있는 돈을 좋은 일에 써달라고 낸 건데, 이 돈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기관의 살림살이 비용 등으로 소진되면 기부자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기부자도 돈의 쓰임을 건의해야 하고, 받는 기관도 기부금을 모으는 방식을 연구하며 사용 내역을 밝히는 등 서로 오해가 없도록 해야겠지요.”

오 변호사는 “사랑 없는 의무적 봉사는 아무런 존경도 신뢰도 얻을 수 없다”며 “변호사 같은 전문직들이 재능 기부(프로보노)뿐만 아니라 진정하고 지속적인 사랑 나눔 봉사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