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론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지난 22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양궁선수단 환영 만찬. 대한양궁협회장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인사말 도중 말꼬리를 흐렸다. 축제 분위기에 들떠있던 행사장이 숙연해졌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세계의 도전은 어느 때보다 거세졌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경기 방식 변경, 국내 양궁 지도자들의 해외 진출, 양궁 기술 유출과 장비의 발달, 경쟁국의 경기력 향상 등 한국 양궁이 맞닥뜨린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런 행사에서 인사말은 통상 덕담으로 채워지게 마련인데, 정 부회장은 위기의식을 강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양궁계의 절대 강자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며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급변하는 국제 경기 방식에 맞는 신기술을 개발하고 대표팀 운영, 훈련 시스템의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선수들과 양궁협회 관계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나갈 때일수록 외형 성장보다 내실을 다지고 품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경영 방침을 연상시켰다.

정 부회장의 ‘양궁론‘은 자동차 산업과도 일맥 상통한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경쟁 구도는 양적 경쟁에서 질적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유럽,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수입차 공세에 위협받고 있다. 자동차 기술은 전기차, 스마트카로 진화하고 있고, 각 업체들 간의 합종연횡으로 공동 개발 사례가 늘고 있다. 중국, 인도 등 후발 업체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해답은 이날 정 부회장이 제시한 기술 개발에 있다. 현대차 그룹은 27년간 양궁을 지원하면서 첨단 장비의 도입을 통해 스포츠 과학화에 앞장서 왔다. 현대차의 발전에도 독자적 하이브리드카 양산 등 기술 경쟁력이 가장 큰 힘을 발휘했다. 이제 남은 것은 열린 사고 방식이다. 정 부회장은 “해외에서 활약하는 국내 양궁 지도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고 한국의 외교력과 영향력을 높이는 정보 창구로 활용하라”고 했다. 국내 차 업계도 수입차 견제에만 급급하지 말고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을 받아들이는 통로로 활용해야한다. 정 부회장의 양궁 발전론이 현대·기아차의 도약에도 그대로 적용되길 기대한다.

전예진 산업부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