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최근 금산분리 강화 법안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0년 은행법 개정으로 확대했던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한도를 9%에서 다시 4%로 낮추고, 대기업의 소유제한을 제2금융권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집단이 비은행금융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보험사 등이 갖고 있는 다른 계열사 지분에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금융업과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이른바 ‘금산분리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금산분리는 원래 은행업과 산업을 분리하는 은산분리(separation of banking and commerce)이지 모든 금융업과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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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업과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원칙일 수 없다. 원칙이라는 것은 보편타당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은행업과 산업을 겸업하는 나라도 있고, 엄격히 구분하는 나라도 있다. 은행업과 산업이 분리된 역사적 배경을 보면 은산분리가 원칙이기가 더욱 어렵다. 은행업과 산업이 분리된 계기가 은행업과 산업의 결합으로 인한 경제 불안과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시장개입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업은 귀금속 제조업과 약속어음 및 환어음을 함께 취급하는 금 세공업에서 시작되었다. 현대 은행의 기원은 무역 활동을 지원하는 머천트 뱅크다. 메디치은행, 하우스 오브 모건 등이 그렇게 출발했다. 체이스맨해튼 은행, 웰스파고 은행 등의 전신(前身)은 기업 내의 금융지원 부서였다.

은행업과 산업을 분리하는 관행의 기원은 1694년 영국의 잉글랜드 은행의 설립이다. 당시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자금조달이 절박했던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 은행을 인가해주면서 정부에 자금을 공급하는 대가로 은행권 발행과 상업업무에 대한 많은 특혜를 부여했다. 그러자 당시에 정부의 특혜 남용으로 피해를 입고 있었던 상인들이 이에 크게 반발했고, 잉글랜드 은행의 상업업무를 금지하게 됐다. 요컨대 은산분리의 규제는 은행과 산업자본의 결합으로 인한 폐해 때문이 아니라 정부와 은행 간의 특수 관계로 인해 생길 폐해를 우려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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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거래계좌를 제공하고, 통화정책의 전달장치로서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다른 금융회사와 구별돼 특별하게 다뤄질 필요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그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은산분리 원칙’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을 보면 일반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금융지주회사도 일반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도록 돼 있다. 은산분리 규제가 가장 강한 미국조차 이렇게까지 강하게 규제하지 않는다.

금산분리는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산업자본을 금융산업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잠재적 기업의 진입을 막아 경쟁을 제한,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우리나라에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은행이나 금융회사가 없는 근본적 원인이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금산분리는 국내자본을 외국자본과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막는 역차별 규제다. 이런 역차별로 인해 외국자본이 우리나라 은행의 대부분을 소유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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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러한데 만약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추진하는 대로 금산분리가 더욱 강화된다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경쟁력 향상은 요원해진다. 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에까지 외국자본이 지배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금융사 의결권까지 제한된다면 우리나라 유수 기업들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크게 노출돼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금융산업의 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반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에 과다하게 가해지고 있는 규제를 걷어내고, 은행에 주인을 찾아줄 수 있도록 금산분리를 완화해야 한다. 그런데 금산분리를 강화하려고 한다니. 경제민주화란 이름아래 지나친 대기업 때리기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jw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