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퍼런 금융감독원이 하는 일이라 가만히 있지만 ‘새희망 힐링펀드’는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일에 쓰겠다며 업계가 애써 모은 돈을 금감원이 생색을 내는 데 쓰겠다는 것 아닙니까.”

금융회사와 유관 협회가 사용하는 법인카드의 포인트를 모아 금융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새희망 힐링펀드’에 대한 한 금융권 인사의 불평이다. 그는 “금감원 체면을 살리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장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힐링펀드 사업은 오는 24일 금융회사와 유관협회들이 협약식을 갖고 사업을 본격 진행한다. 펀드 재원은 은행권에서 3억여원, 증권업계에서 4억여원을 내고 카드사들도 수억원을 보탤 계획이다.

하지만 힐링펀드에 대한 금융권의 시각은 냉랭하다. 신용카드 회사가 조성한 사회공헌기금을 힐링펀드 재원으로 삼겠다는 대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신용카드 사회공헌기금은 고객들이 미처 쓰지 못해 소멸되는 카드 포인트 등을 모아 카드사들이 한 해 200억원씩 출연해 만든다. 이 기금은 신용회복프로그램을 이행 중인 사람에게 소액대출을 해주거나 영세 가맹점주 자녀들의 학자금 지원 등에 쓰인다. 힐링펀드와 차이점이라면 지원대상이 금융피해자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것일 뿐 취약계층에 대한 학자금과 생계비 지원이나 대출사업 등에서 차이가 없다. 같은 목적으로 쓰일 돈을 굳이 금감원 이름으로 바꿔 사용해야 하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금감원이 신용카드 사회공헌기금을 쓰겠다고 나선 데는 사연이 있다. 카드사들은 자신들의 법인카드를 쓰면서 포인트를 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포인트가 없으니 사회공헌기금이라도 내놓으라는 것이 금감원의 요구다.

금감원은 이달 초 힐링펀드와 관련해 금융회사 등의 사회공헌부장들을 불러서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자회사인 신한카드를 법인카드로 쓰고 있는데 포인트를 적립받지 않고 있지만 힐링펀드 기금은 내야 한다. 자율과는 관계가 멀다는 얘기다.

서민들의 힘든 사정을 거들고 싶은 금감원의 뜻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누군가를 옥죄는 구조라면 실리를 얻기 어렵고 오래갈 수도 없다. 명분을 앞세운 시장왜곡은 금감원 자신에게 부메랑이 될 뿐이다.

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