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1483~1520)가 숨을 거둔 날 조수 줄리오 로마노는 스승의 아틀리에를 찾았다. 실내에 들어선 순간 벽에 걸린 한 점의 누드 초상화가 그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누드의 여인은 바로 스승의 애인인 마르게리타 로티였다. 그림 속의 마르게리타는 마치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로마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로마노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여인은 오른손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왼팔 위쪽에 감겨진 리본이었다. 리본 위에는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라파엘로 산치오’. 게다가 여인은 왼손에 각진 루비가 박힌 반지를 끼고 있었다. 약혼반지였다. 로마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림은 라파엘로가 마르게리타와 비밀리에 약혼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암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림에 담긴 비밀이 알려지면 큰일이었다.

사실 라파엘로는 몇 년 전부터 교황청의 유력한 인물 중 한 사람인 메디치 비비에나 추기경으로부터 자신의 조카인 마리아 비비에나와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1514년 그는 결국 마지못해 약혼 제의를 받아들였지만 결혼은 3~4년 후에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는 다시 이런저런 이유를 대 결혼을 미뤘다. 결혼을 미룬 데는 이유가 있었다. 마음에 둔 여인이 생긴 것이다. 라파엘로는 교황청 내에서 바람둥이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빈민가 빵집 딸인 마르게리타를 알게 되면서부터 일편단심 충성스런 남자로 돌변한 것이었다.

그가 마르게리타를 만난 것은 교황청 부근의 테베레 강을 지나다 우연히 멱을 감고 있던 그의 눈부신 자태에 반하면서였다. 그의 마르게리타에 대한 열정은 다른 여인에 대한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는 한시도 이 매력적인 여인과 떨어져 지낼 수 없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마르게리타와 함께했고 심지어 그가 옆에 없으면 그림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였다.

라파엘로의 이 빵집 아가씨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는 그의 작품 속에 마르게리타 얼굴이 수없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때로는 성모 마리아로, 때로는 성녀 세실리아로, 혹은 바다의 요정 갈라테아로 등장한다. 라파엘로에게 그는 미의 이상이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맘에도 없는 여인과의 정략결혼이 내킬 리 없었다. 그렇다고 비비에나 추기경의 심기를 마냥 불편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약혼녀인 마리아 비비에나가 병으로 사망한 것이다. 수년간 라파엘로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던 부담감이 일시에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라파엘로에겐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있었다. 마르게리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곧 자신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었다. 교황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귀족들의 선망의 대상인 그가 일개 빈민가 빵집 여인과 결혼한다면 천하의 조롱거리가 될 테고 그에게 실망한 귀족들이 더 이상 자신에게 주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방법은 오직 하나. 마르게리타와 비밀 가약을 맺는 것이었다.

둘의 결혼은 대외적으로 공표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라파엘로는 둘의 사랑을 그림으로나마 영원히 흔적으로 남기고 싶었다. 마르게리타의 누드 초상화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봐서는 안 되는 그림이었다. 오직 라파엘로와 마르게리타 두 사람만을 위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너무도 잔인했다. 라파엘로는 그림의 마지막 손질만을 남겨 둔 상태에서 얘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1520년 3월 말의 어느 밤 라파엘로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마르게리타와 뜨겁게 사랑을 불태우고 있었다. 둘은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사랑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 탈진한 라파엘로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시종이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라파엘로에게 탈진의 원인을 물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자신의 명예에 누가 될 게 뻔했다. 그는 간밤의 일을 숨긴 채 엉뚱한 이유를 둘러댔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의사는 라파엘로의 말만 듣고 엉뚱한 처방을 내렸던 것이다. 병세는 날로 악화됐고 라파엘로는 결국 4월6일 숨을 거뒀다. 라파엘로의 시신은 팡테옹에 안치됐다. 사랑을 잃은 마르게리타는 자신의 나머지 삶을 라파엘로의 명복을 비는 데 바치기로 한다. 그는 팡테옹 옆의 산타 아폴로니아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로서 생을 마친다.

로마노가 스승의 아틀리에를 찾은 것은 바로 장례식이 끝난 직후였다. 그는 스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마르게리타의 초상화에서 손가락에 끼워진 약혼반지를 지워버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오랫동안 ‘라 포르나리나(빵집 딸)’라는 제목으로 알려졌고 라파엘로는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 이 초상화가 약혼 기념 초상이라는 사실이 발견된 것은 2001년 이탈리아 복원전문가들의 X-레이 투시 작업에 의해서였다. 로마노의 덧칠 아래 숨죽이고 있던 루비 반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500년간 파묻혔던 애틋한 사랑의 진실이 마침내 밝혀진 것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