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금융상품 키코(KIKO) 사태, 저축은행 비리,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 등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또 공공성을 상실하고 온갖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며 자신들의 탐욕만을 채우기에 급급한 재벌들의 부도덕한 행태 등은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열불 나게 하고 있다.

기업들의 불법·탈법 행위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행정적 제재와 민사상 손해배상을 통해 규제되고 있다. 그런데도 기업의 불법행위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더할수록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가 뭘까?

그 답은 이런 불법행위가 기업에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분석해 볼 때 10대 재벌기업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며 올린 매출액 규모는 △2007년 19조6470억원 △2008년 4조3318억원 △2009년 5조8409억원 △2010년 3조8489억원 △2011년 64조7767억원 △2012년(7월13일 현재) 21조4025억원 등 2007년 이후에만 총 119조8479억원에 이른다.

기업들 법 위반해 매출 올려도 공정위 과징금은 '솜방망이'

그러나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2007년 1873억원(부과율 0.95%) △2008년 532억원(1.23%) △2009년 4107억원(0.7%) △2010년 1189억원(3.09%) △2011년 3740억원(0.58%) △2012년 189억원(0.09%) 등 모두 합해도 1조5873억원에 불과하다. 부당 매출액 대비 1.32% 수준이다.

만약 기업이 불법행위를 통해 얻은 영리적 이익보다 훨씬 더 큰 손해배상액이나 과징금을 부과받는다면 그래도 기업이 불법행위를 계속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은 끼친 손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보상하게 하는 전보적 손해배상(보상적 손해배상·compensatory damages)만으로는 예방적 효과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고액의 배상을 치르게 함으로써 장래에 유사한 불법행위의 재발을 억제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1763년 영국의 ‘Huckle v. Money 사건’(불법행위로 얻어지는 이익이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초과한다는 계산 아래 징벌적 배상을 인정한 최초의 사건)에서 처음으로 그 용어가 등장했는데, 이후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주로 영미법계 국가로 파급돼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2배수 징벌배상을 민법에 도입(2008년)했고, 중국은 개인이 자신에게 손해를 입힌 기업을 대상으로 무한 징계성 배상을 요구하는 권리를 담은 침권책임법(侵權責任法)을 제정해 시행(2010년)하는 등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점차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2006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 논의 과정에서 기존 손해배상제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부상했으나 실제 입법으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2011년 3월에야 하도급법에 처음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현재 수준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공정위의 솜방망이 처벌로는 담합으로 인한 피해와 대기업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 및 부당지원 행위 등 재벌기업의 불법·편법 행위를 억제하기에 미흡한 실정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손해배상제도는 피해자 구제에 충실하지 못하고 악의적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특히 예상되는 손해배상액이 불법행위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작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를 통해 시장에서 사후적 규제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논리는 난센스에 가깝다. 시장지상주의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가장 잘 보장돼 있다는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자체가 기업의 건전한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 기업의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기업 활동 위축 우려는 난센스…美·호주 등 넘어 확산 추세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확대·도입한다면 경제력·조직·정보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회·경제적 강자에 의한 구조적 불법행위를 억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다수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건전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함께 집단소송제 또한 재벌들의 편법과 불법을 규제하는 데 있어서 공적집행의 한계를 보완하고, 소비자의 민사적 구제시스템을 확충하는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증권거래 분야에 한정해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된 바 있다.

그러나 입법 당시 집단소송의 남용 우려로 소송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제도 도입 이후 현재까지 법원에서 허가한 소송은 단 1건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과거 재벌들의 분식회계나 재벌 총수들의 내부자거래 등 각종 불법행위로 선의의 투자자(주주)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다. 이럴 경우 집단소송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CD 담합 의혹’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담합은 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다수의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대단히 은밀히 이뤄지는 담합의 속성상 감독당국의 적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참에 집단소송 요건을 증권 관련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으로 확대해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제도화하는 양성화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한다.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담합의 피해당사자인 소비자에게 ‘법집행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있으며 그 유용성은 미국 영국 스웨덴 등 이미 집단소송제를 도입·운영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경험에서 충분히 확인되고 있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재벌의 불법과 편법을 견제하고 건전한 시장환경 조성을 통한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원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 도입은 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될 것이다.

이상직 <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

△전주고 △동국대 경영학 △고려대 경영학 석사(EMBA) △이스타항공그룹 회장 △19대 국회의원 △국회 정무위 위원 △민주통합당 원내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