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앞다퉈 가계대출과 중소기업대출 최고금리를 2~3%포인트 낮추고 있다. 지점장 전결 가산금리를 없애 신용등급이 같으면 동일한 금리를 적용키로 했다. 서민대상 특별대출을 늘리고 개인이 부담하던 신용평가·담보변경 등의 수수료를 폐지하는 은행도 있다. 얼핏 보면 환영할 일이지만 은행들이 갑자기 ‘착한’ 일을 하는 이유가 비난여론 무마용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최근 CD금리 담합 의혹에다 대출 학력차별, 대출서류 위조, 고무줄 가산금리 등 온갖 부도덕이 드러난 터다.

그런데 은행들이 발표한 조치들을 들여다보면 눈가리고 아웅식이라는 데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내린 대출 최고금리는 적용대상이 가계대출 2.1%, 중소기업대출 0.4%(지난 6월 기준)에 불과하다. 대다수 고객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다. 연 12~15%의 최고금리는 연체가 있는 개인이나 부도기업의 대출 연장 때나 적용하는 금리다. 지난 3년간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내려가는데 은행들이 대출 가산금리를 부풀려 21조원을 챙겼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는 안중에도 없다. 폐지한다는 수수료도 실은 은행이 부담할 것을 고객에게 전가해온 것이다.

물론 경기침체 여파로 은행들도 점차 수익성이 나빠지고 부실채권이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금융당국이 한편으론 건설사 지원 및 서민금융, 가계대출 확대를 종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부실채권을 감축하라고 요구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판이다. 일괄적인 대출금리 인하는 은행 건전성을 취약하게 만들어 중장기적으로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신뢰 추락을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피해를 본 CD연동 대출자들에게 가산금리를 최소한이나마 낮춰주는 노력을 보였어야 마땅하다. 진정성이 결여된 쥐꼬리 선심으로 고객들의 불만을 무마할 요량이었다면 실망스럽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만들어준 과점체제 속에서 비교적 손쉽게 장사해 온 은행들이다. 행여 은행이 부실해져 경제위기가 재발할까봐 권한과 영역을 무한정 키워줬지만 은행의 책임의식은 오히려 뒷걸음이었다. 은행으로서는 고객이 은행을 믿지 못하는 것만큼 큰 위기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