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은 얼마 전 직원들로부터 ‘미묘한’ 보고를 받았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금호산업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장 대주단(우리은행·농협은행)이 채권단 경영정상화 약정(MOU)을 위반했다는 내용이었다. 대주단이 지난해 시공사인 금호산업과 별도 약정을 맺고 공사비 지급에 앞서 중동 부천PF사업장의 대출원금을 먼저 회수하려 하기 때문에 이의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 강 회장은 보고서에 서명을 한 뒤, 이례적으로 몇 글자를 더 적었다. ‘원칙대로 처리하라’는 문구였다.

산은은 곧바로 지난 2일 금호산업의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소집, “우리은행 등 대주단이 중동 부천 PF사업장 대출원금 2350억원을 먼저 회수하려는 것은 채권단 경영정상화 MOU 위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채권금융기관들과 함께 대주단 및 금호산업 간의 별도 약정에 대한 약정 무효 확인 소송 등을 추진하고 주채권은행을 기존 우리은행에서 산은으로 바꾸는 방안도 협의했다.

우리은행은 PF 대출원금 회수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금호산업과 맺은 별도 약정이 채권단 MOU 위반이 아닌 데다, PF 대출원금 회수도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산은과 마찬가지로 법적 대응을 통해 끝장을 보겠다며 배수진을 친 상태다. 두 은행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으로 전개되자 다른 채권금융기관들도 술렁이고 있다. 산은과 우리은행의 눈치를 보며 서로 계산기만 두드리는 모양새다.

금호산업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공사비를 지급받지 못하면 올해 말 4000억원 안팎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부채비율도 급등할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연말에 대규모 감자를 진행해야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은행 간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금융감독원은 뒷짐만 지고 있다. 두 은행에 “시끄럽게 문제를 만들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며 질책한 게 전부다. 물론 금융당국이 어느 한 금융기관의 편을 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기업개선작업 중인 한 기업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재안을 마련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금융계의 바람이다. 금감원장에게 달랑 보고서 한 장 올리고 팔짱끼고 지켜볼 일이 아니다.

장창민 금융부 기자 cmjang@hankyung.com